2020 신년감사예배설교 / 교회가 서야 할 자리(딤전3:14-16)

 


제목 : 교회가 서야 할 자리

말씀 : 딤전 3:14-16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어떤 개체이든 집단이든 간에 각각 그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간은 다른 모든 생명체들과 구분되는 어떤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높은 도덕성과 풍부한 감정, 그리고 지적인 능력과 영적인 요소등이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가지고 있는 지정의라고 하는 인격적인 요소들과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영적인 요소들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러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러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요소들중에 어떤 한 요소들이 결여된다면 참다운 인간으로서 누려야 가치와 의미를 온전히 누리기는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도 역시 똑같습니다. 교회는 교회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교회가 교회로서의 역할을 올바르게 할 수 있으며, 교회에 속한 구성원들이 누려야 가치와 의미를 바르게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를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특징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물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말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룩이란 여러번 말씀드린바 있지만 외적으로 근엄하다거나 단정하고 깨끗하고 장중한 어떤 분위기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룩이란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구별되었다는 것은 물론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과 구별되었기 때문에 세상과는 다른 사상과 다른 목적과 다른 가치와 다른 사명과 다른 삶의 양식과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그 존재하는 목적이나 해야할 사명이나 살아가야 할 모습이나 가져야 할 목표가 세상의 다른 공동체와는 다릅니다. 세상의 어떤 공동체들은 영리가 그 목적이자 사명입니다. 또 어떤 공동체들은 친목이 그 목적입니다. 또는 지식의 전달이나 혹은 인격의 수양 혹은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인 집단도 있고, 자선사업을 목적으로 세워진 공동체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의 목적은 영리도 아니고, 친목도 아니고, 자선사업도 아니고, 질서유지도 아니며, 지식의 전달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격의 수양도 아닙니다. 교회의 목적은 죄가운데 빠진 인생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인간 자신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영혼이 누려야 할 참된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어지면 결국은 세상의 다른 공동체들이 추구하는 영리라든가 친목이라든가 질서나 자유, 자선사업등등의 다른 목적들은 부차적으로 따라오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거룩한 공동체로서 세상의 다른 공동체들과는 다른 인간 구원의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교회는 어떤 기초위에 서야 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그 본래의 목적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 본래의 목적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은 고사하고 사실은 그 자신의 존립조차도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겉모양이 그럴듯해도 기초가 든든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무너져 내립니다. 아무리 높이 높이 쌓아 올려도 기초가 분명하지 못하면 곧 쓰러지고 맙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작업을 해도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도 말씀하시기를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그 집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하면서 반석위에 집을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옛말에도 사상누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초를 제대로 하지 않고 모래위에 지은 집 같이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해 놓으면 쉽사리 무너져 내린다는 것을 비유하여 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든 기초가 잘 잡혀 있어야 합니다. 공부도 기초가 잘 잡혀 있어야 하고, 인생도 어릴 때부터 기초를 잘 닦아 주어야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초가 잘 되어 있어야만 어떤 상황이나 조건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참된 가치를 누리며 그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공동체인 교회의 기초는 무엇이겠습니까?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3장에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었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1:23절에서는 교회를 가르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였으며, 오늘 말씀에서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란 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물론 상대적인 진리는 있을 수 있지만 인간의 영과 육과 정신에 있어서 완전하고도 영원한 생명을 주는 완전한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뿐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교회의 기초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위에 굳게 서는 일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위에 굳게 서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무엇보다도 진리의 터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진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교회는 무의미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떠난 교회는 이미 존재가치를 상실한 공동체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기초로 하지 않는 교회는 모래위에 지은 집과도 같습니다. 진리의 말씀위에 터 잡지 않은 교회는 앙꼬없는 찐빵이요, 태양없는 지구요,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이요, 단맛을 잃어버린 설탕이요, 구멍난 풍선이요, 김빠진 콜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우리 장로교의 창시자인 칼빈 선생은 그의 불후의 명저 기독교 강요라는 책에서 「진정한 교회의 으뜸가는 표지는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의 말씀에 충성하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거룩한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우리가 비록 부족하지만, 우리가 비록 무지렁이 같지만, 우리가 비록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보십니다. 벧전2:9에서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이며,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세상속에서 빼내심을 받고 구별된 백성입니다. 비록 연약하지만, 비록 정말 하나님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때도 많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소원하는 거룩한 사람들이요, 진리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똑똑해서, 거룩해서, 선하고 의로워서가 거룩한 백성이 된 것이 아닙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나약하지만, 미련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편에 속해 있고, 진리에 속해 있고, 그래서 하나님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기로 다짐하고 소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귀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고 인도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고 큰 영광으로 채워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성별된 우리는 언제나 진리의 말씀을 기초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그 진리의 말씀을 온전히 따를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의식속에는 언제나 진리의 말씀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족하니까, 의롭지도 못하니까, 거룩하지도 못하니까, 전지전능한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까 우주만물의 주인이시며,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의 근거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부부가 주일날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주로 아내는 질문을 던지고, 남편은 대답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여보 여보, 오늘 김집사님이 입고 온 그 멋진 새옷 보았어요? 아니. 그럼, 이집사님이 입고 온 그 밍크 코트는요? 아니. 그럼 성가대에 앉아 있던 박집사 얼굴 화장이 이상하던데 그것은 보았지요? 아니. 그럼 목사님의 넥타이가 삐뚤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보았어요? 아니. 오늘 목사님이 찬송 부를 때 음이 엉망이었죠? 몰라. 그러자 아내는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니! 당신은 교회가서 그런것도 못보고 도대체 무엇을 보고 왔단 말예요? 나! 목사님 설교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을 보고 왔지.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올바르게 보아야 합니다. 올바른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진리의 말씀으로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새해 첫날 KBS 아홉시 뉴스를 들었습니다. 제일 먼저 정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경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그리고 한참 있다가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뉴스가 끝난 다음에는 스포츠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올해에는 경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물론 그 취지는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경제가 어려우니까 국민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하여, 의욕을 주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 위하여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며 뉴스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뉴스를 들으면서 대단히 서글펐습니다. 좋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게 정말 다 입니까? 그게 정말 인간을 참다운 인간이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정말 인류에게 온전한 소망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입니까? 그것이 인간의 죽음의 문제를, 생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진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참되고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가운데 참다운 사랑과 은혜와 기쁨과 축복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것이 그들이 한계니까요. 그것이 죄가운데 빠진, 무지 가운데 빠진 우리 인생의 어리석은 모습이겠지요. 그러나 그런줄 번연히 알면서도 저는 정말 서글펐습니다. 언제나 저 텔레비젼 뉴스에서 하나님께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언제나 저 공영방송에서 참된 진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언제나 저 아홉시 뉴스에서 인생의 참된 생명의 문제에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정말 아쉬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여러분, 텔리비젼 너무 많이 보지 마십시오. 보시더라도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보십시오. 그것을 보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 돌아가는 세상속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분별하며 보셔야 합니다.

저는 가끔 방송을 보다가 또 한가지 안타까운 일이 있는데 그것은 공영방송에 무슨 그렇게 잡다한 연예인들 이야기가 판을 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무슨 호화판 쇼나 춤판을 벌리고, 주연상이니 조연상이니 올해의 톱 가수니 하면서 휘황찬란하고 요란맞게 난리를 치는 것을 보면 저는 정말 안타깝습니다. 물론 좋습니다. 그들도 나름대로 우리 인간의 삶에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도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제가 불만인 것은 그렇다면 이 사회 각 계층에서 그 만큼 공헌 안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농민들만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사회에 공헌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우리 농민들이 그래 그까짓 연예인들에 비하겠습니까? 그런데 왜 농민들을 위한 행사는 그렇게 호화판으로 화려하게 해주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또 연예인만 못하단 말입니까? 아니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그들만 못하다는 말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올바른 가치와 목적을 알 수 있고, 그래야 온전한 생명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롬12:2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올바른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저 세상이 돌아가는대로, 세상 풍조를 따라 휩쓸려 다니다가 보면 결국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둠의 세력들에게, 사단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올바른 분별력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야 합니다.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터위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엡6:14에서는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4:24에서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6:7에서는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진리의 전당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이요, 진리의 터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진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진리의 터위에 자리잡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진리의 터위에 굳게 서서 교회는 이 세상에서 진리의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다른 어떤 공동체도 이일을 할 수 없습니다. 대학에서도 할 수 없습니다. 텔레비젼에서도 할 수 없습니다. 정부에서도 할 수 없습니다. 경찰도 이 진리를 지켜 줄 수 없습니다. 국회에서도 정당에서도 다른 어떤 사회복지 단체에서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거룩한 공동체인 교회에서만이 거룩한 사역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오직 거룩한 무리들인 저와 여러분만이 이 거룩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진리의 터 위에 굳게 서지 않으면 우리는 줏대없이 이리저리 세상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진리의 기둥으로 버티어져 있지 않으면 마귀사탄의 공략에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지 않으면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의 터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아무리 아름답게 치장을 해도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도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소용없습니다. 심지어는 아무리 사랑이 넘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의 말씀없이도, 하나님없이도 사랑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없이도 얼마든지 재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없이도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 없이도 화려할 수도 있고, 인격수양도 할 수 있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사랑도 하고, 부귀영화도 누리고, 기쁨을 누리기도 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해지기도 하고, 인생을 나름대로 즐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상 누각입니다. 모래위에 지은 집입니다. 환난과 풍파가 몰아 칠 때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세상 끝날 주님의 심판대앞에서 그것들은 아무런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것들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거룩한 백성들은, 우리들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리들 진리에 속한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의 기초위에 우리 자신을 건축해야 합니다. 우리 온혜교회는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굳건히 세워져야 합니다. 이 진리의 말씀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온혜교회의 1999년도 표어는 「진리의 터위에 굳게 서는 교회」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진리의 터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거룩한 성도는 거룩한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성도인 우리는 성도로서의 사명을 감당함과 동시에 그 권리를 올바르게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내가 살고, 우리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삽니다. 그럴때만이 이 또한 이 사회가 삽니다.

올 한해는 정말이지 나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진리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위에, 교회의 기둥과 터인 진리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세워지는 우리들 모두와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실로 저와 여러분과 우리들의 가정과 우리 온혜교회가 이 지역을 구원하기 위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가운데 저와 여러분의 삶에는 참으로 은혜와 기쁨과 참된 생명의 풍성함이 넘치는 축복된 삶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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