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 마태복음 7장13-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마 7: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좁은 문’이 있으면 ‘큰 문’이 있고, ‘넓은 길’이 있으면 ‘협소한 길’이 있다. 

인생의 길은 두 길이 있다. 

‘좁은 문’은 믿음의 문을 말하며 그 문에 들어가면 협소한 길이 보인다. 

즉 협소한 길은 힘들고 어려운 길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믿음은 쉬운 것같은 길이지만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영적 생명, 주님의 생명은 그리 쉽게 얻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주님의 생명의 길은 핍박과 환난과 어려움을 닥친다해도 

외롭게 주님과 동행하며 성령에 붙잡혀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던져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좁은 문을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눅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렵고 힘이 들지만 그래도 힘써 들어가야만 생명이 산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협소한 길로 가는 사람은 생명을 얻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서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은 멸망한다. 

넓은 길은 세상 길이다. 

세상길은 걷기가 편하다, 

자신의 뜻과 생각대로 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있는가하면 거짓선지자가 있는 것이고 

지혜로운 건축자가 있는가하면 어리석은 건축자가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 협소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행함으로 

그 모습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는 사람이다. 
 

약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주님을 영접하고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좁은 문으로 가지 못하고 

넓은 문과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이 있다. 

성경 말씀을 살지 아니하고 육신의 소욕대로 생활하며 거룩한 척하고 

성결한 척하는 자는 넓은 길로 가는 자이며 말씀 가운데 거하면서 

성령에 붙잡힌 사람은 환란과 고난을 당하며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이기 때문에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이다. 




이 좁은 길로 가는 자는 생명의 역사가 있고, 영혼이 소생하여 자라난다. 

그래서 예수를 구주로 확실히 믿는 자는 천국에는 가게 되는 것이다. 

  

고전 5: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을 걸어가는 세상에 휩쌓인 사람이다. 

따라서 생명이란 믿는 사람이 좁은 길로 걸어가면서 말씀을 지킬 때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고 영혼이 날마다 자라나는 것을 뜻한다. 




 믿는 자가 넓은 길로 가면 멸망한다는 것은, 영적 생명의 역사가 없기 때문에 

영적 생명의 요소들을 잃어 버려 자라나지 못하고 만들어지지 못하며, 

마지막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겨우 영혼만 불 가운데서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을 받게 된다.

  

고전 3: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며, 

좁은 길로 걸어가는 사람이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핍박이 온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므로 제재받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믿음이야 말로 환난과 역경을 만나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신앙생활에서의 직분은 믿음의 척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이신 삶과 가르침대로 

나 스스 그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고 실천하며 행함을 보여주는 

믿음생활을 하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 살아가는 사람이다. 




말씀을 지킨 것만큼 생명의 역사가 있고, 영이 자라나고, 신앙인격이 만들어진다. 

말씀을 많이 붙든 것만큼 길이 좁아지고 그만큼 찾는 사람이 적으나 생명과 인격은 그만큼 커진다. 




 그러므로 성도는 좁은 문에서 좀 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서 

생명이 날마다 살아 나가고 신앙의 열매가 더욱 많이 맺혀 나가야 

하나님 앞에 가서 상급을 많이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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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회설교 _ 세상을 품고 기도할 자 누구인가? (시편 67:1-7 )

 

 

 

제목 : 세상을 품고 기도할 자 누구인가?

말씀 :  시편 67:1-7


오늘 시편 기자는 처음부터 하나님에게 복을 달라 합니다. 복을 달라는 기도를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민족과 온세상 사람들에게 복을 내려달라는 기도로 특별한 시입니다. 본문은 모든 열방을 향한 기도입니다.  열방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복음을 듣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종교와 관련된 말은 듣기도 지루해 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온 열방을 위해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하는 사람만이 그 복의 기쁨을 알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쓰는 그가 진짜 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 시인이 무슨 복을 받았을까요? 풍성한 열매일까? 오곡백과 풍성한 수확이 복을받았다고 하진않습니다. 진짜 복이 무엇인지를 1절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얼굴로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고~ 하나님의 환한 얼굴을 보았다는것은 그만큼 하나님과 친밀한 것이며 그 복의 기쁨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를 않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에는 복음을 믿고, 살아내고, 전하는 사명 즉 믿음과 삶과 사명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복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사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삶을 살게 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본인이 죄를 이기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고 그리고 나아가서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 합니다. 이 세가지가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두번째가 빠져 있습니다. 열매가 없는 것인데 이는두번째 삶이 살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을 증명하는 날이 올 것이라 믿어지시나요? 여기서 신앙인들이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믿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룰 것입니다. 어떤 역사를 통하여 그런 일을 하실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환한 얼굴로 비추어 준 사람들이 일어나면 여호와의 지식이 온 땅에 퍼지는 날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늘 주님이 함께 하시니까 은밀한 죄를 짓지 않는 사람 고난을 축복이라고 여기는 사람 그런 사람이 여러분 주위에 있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문제는 교인 수가 적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지 않는 것입니다. 위대한 선교사님은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정말 아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주님과의 온전한 연합을 원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전에 먼저 점검해야 하는 것은 속에서부터 생수가 솟아나는가? 환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는가? 를  점검해 보아야합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있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삶이 하나도 안바뀝니까? 세상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찌 그런 모습인가? 삶의 흔적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복을 달라고 하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민족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진짜 믿는 믿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짜 믿는 사람은 내 형편이 어렵더라도 내 속에서부터 기쁨이 솟아 올라옵니다.  세상사람들이 내가 하나님을 믿는 흔적이 없이 믿는다고 하니 조소의 눈빛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입니다. 어떻게 삶이 이렇듯 하나도 바뀌지 않을 수가 있나요? 그렇다면 제대로 믿고 있는 것이 아니고 복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삶 전체가 완전히 뒤바뀝니다. 하나님이 정말 그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되는 그런 복은 모든 그리스도 인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특별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로이 있다면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소경 바디메오는 예수님이 어디 계신줄은 모르지만 예수님은 들으시고 오실 수 있으니 소리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소경 바디메오와 같은 사람이 계실 수 있습니다.  간절히 원하신다면 주님은 우리의 갈망을 들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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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예배설교(Preaching at the dawn) / 날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생활

 

 

 
출16:4-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하나님께서 날마다 필요한 양식으로 만나를 주신 목적은 4-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고 하셨다. 물질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아니면 살 수 없으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믿음을 보시기 원하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16:20-모세의 말을 순종하지 않고 이튿날 먹으려고 남겨두었다가 벌레가 나고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물질 자체가 죄가 아니라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가지려는 지나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쌓아두려는 것이 죄악이다. 지금도 부자들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어려움이 많다. 어떤 사람은 한탕해서 돈을 벌어 놀고먹으면 팔자가 편할 줄로 착각한다. 눅12장의 어리석은 부자를 보라


또 신8:16-너희 선조들이 일찍이 먹어보지 못한 만나를 너희에게 먹여주시지 않았느냐? 너희에게 시련을 주어 너를 시험하여 마침내 네게 복을 주시려는 것이었다. 사람의 배고픔은 견디기가 힘든 어려움이지만,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라는 믿음을 보시기 원하셨다


예수님도 만나에 대해 말씀하셨다.


요6:3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고 말씀하시며 예수님 자신이 요6:35-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다


신8:3-하나님께서는 너희를 고생시키시고 굶기시다가, 너희 선조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여주셨다. 이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을 따라야 산다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주시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첫 번 시험받으실 때 인용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믿음의 사람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생명의 만나로 날마다 생명의 꼴이 풍성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의 일생은 하루 이틀 살다가 말 것이 아니다. 교회도 조금 다니다가 말 것이 아니고 내가 다니고 싶으면 다니고,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구만 두거나 어느 특별한 때만 다니는 특별행사도 아니다. 그렇다고 학생들 방학이나 졸업 혹은 군인처럼 휴가나 제대처럼 어느 기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신앙생활이란 한번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낮이나 밤이나 추우나 더우나 몸이 아프거나 건강하거나 형편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바쁠 때나 잠잘 때라도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계속하는 생활이다


교회에 예배드리는 주일낮 밤 수요밤 새벽기도만 아니라 속회나 교회에서 모일 때나 개인으로 혼자 있을 때도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죽을 때까지 생활 자체가 믿음생활이다. 어느 한 때만 빤짝했다가 쉬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는 잘 하고, 끝나고 나면 내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 여러 사람이 모여 있어 사람이 볼 때나, 다른 사람이 없는 집에서 나 혼자 있을 때에도, 언제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과 함께 늘 같이 사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생활도 쉬지 말고 하라는 것은 숨 쉬는 것과 같이 생명과 관계되기 때문에 누가 하라고 해서 하고 하기 싫고 힘들다고 안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숨 쉬는 것이 힘들면 심장병 걸린 증상처럼 기도가 없으면 죽은 것이다


기도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살고 죽는 문제다 평생 골골하면서 겨우 목숨만 붙어서 연명하는 것은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 죽지 못해서 겨우 사는 것이다.


밥을 먹는 것도 어쩔 수 없이 살려고 먹는 것이 아니라 이왕이면 밥 잘 먹고 건강해서 신바람 나게 살아야죠. 건강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다


생명의 양식인 성경을 밥 먹듯이 꿀맛처럼 맛있게 먹고 영육 간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의 생활하는 사람의 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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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 설교 내용 요약  : 복을 부르는 생명의 말의 원리

 

 

 

 

 

인생은 말로 세워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합니다.

말을 복을 부르는 말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비밀을 지켜주십시오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이웃과 논쟁이

생기면 주제에 대한 변론만 하고 그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갈등 대상의 은밀한 일도 누설하지 말아야 한다면 친구나 동료나 가족의 은밀한 일은 더욱 누설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거운 입으로 남의 비밀을 지켜줄 줄 아는 사람이 사람과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결국 복도 받습니다.

 

남의 은밀한 일을 누설하면 어떻게 됩니까?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네게

대한 악평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남의 비밀을 누설하면 2가지 결과가 생깁니다. 첫째, 듣는 자가

꾸짖습니다. 성격이 강한 사람은 대놓고 “집사님! 그런 비밀을 감춰주세요.”라고 꾸짖습니다. 둘째, 악평을 듣습니다.

인격자들은 누설하는 말을 그냥 들어주더라도 속으로는 저 사람은 가까이 하면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남의 단점을 내게 누설하는 사람은 내 단점을 누군가에게 또 누설하기 때문입니다.

 

외경 집회서 27장 16-18절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비밀을 누설하는 자는 신용을 잃고 진정한 친구를 얻을 수

없다/ 친구를 사랑하고 신의를 지켜라. 그러나 만일 그의 비밀을 누설했거든 그를 따라다니지 말아라/ 마치 원수를

죽인 사람같이 너는 네 친구의 우정을 죽인 것이다.” 그처럼 남의 비밀을 누설하는 자는 입이 가볍고 신실하지 못한

자로 소문나면서 결국 좋은 인맥과 친구를 잃게 됩니다.

 

2. 합당하게 말하십시오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아로새긴 은쟁반의 금 사과’란 가치 있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시의적절한 말은 무엇보다 가치 있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남과 조화를 이루는 말의 능력을 키우십시오. 윗사람이라도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으로 통일하자!”고 강요하지 말고 차이를 존중하며 온유하고 친절하게 말해야 영향력을 얻습니다.

 

사랑은 온유하고 친절한 것입니다. 요즘 여자들은 남자다운 남자보다 얼굴이 귀여운 여성스런 남자를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런 남자들이 친절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물론 친절한 남자를 무턱대고 좋아하면 제비족에게 넘어갑니다.

제비족들은 매너가 끝내줍니다. 왜 남편들이 뼈 빠지게 일해서 가족을 부양하면서도 좋은 남편 소리를 못 듣습니까? 매너가 빵점이기 때문입니다. 제비족이나 족제비족들을 보십시오.

인생은 개판인데 매너 하나로 멀쩡한 여자들을 사로잡습니다. 사람은 친절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친절은 천성이 아니라 노력과 습관입니다. 일본 사람들 개개인은 대개 친절합니다. 길을 한번 물으면 얼마나 잘 안내해줍니까? 식당에서도 얼마나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섬겨줍니까? 친절이 몸에 밴 것입니다. 상점에서 싼 물건에 대해 물어도 친절하게 대답해주고 흥정하다가 그냥 나와도 뒤에서 감사하다고 인사합니다. 옛날의 평화시장에서처럼

옷가게에서 옷 한 번 만져보고 그냥 나온다고 뒤통수에 대고 욕을 해대면 누가 그 가게에 가겠습니까?

 

왜 경상도 남자들이 무뚝뚝하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까? 무뚝뚝한 말 때문입니다. 경상도 말을 보면 말의 압축파일

같습니다. “뭐꼬?(무엇입니까?) 할뱅교?(할아버지 오셨습니까?) 자는 누꼬?(저 아이는 누구입니까?) 멍교(무엇 때문에 그러시는가요?) 니끼가?(당신의 것입니까?)” 그런 무뚝뚝한 말이 밴 사람에게 예의 바른 서울말은 오히려 느끼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랑도 없이 말만 친절하면 느끼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담아 자상하고 부드럽게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면 상대의 마음을 얻습니다.

 

3. 슬기롭게 책망하십시오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책망할 때 슬기롭게 책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책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청종하는 귀’입니다. ‘슬기로운 입’과 ‘청종하는 귀’가 연합될 때 최고 작품 인생이 펼쳐집니다. 충성이 무엇입니까? ‘청종하는 귀’를 가진 것입니다. 그처럼 청종하는 충성된 사람은 추수하는 날의 얼음냉수처럼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13절).

 

요새 삶이 각박해지면서 부드럽고 따뜻한 표정을 한 사람들을 만나기가 점차 어렵습니다. 이런 때에 상처 입은 마음을 만져주는 따뜻한 한 마디의 말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책망할 때도 책망 말미에는 항상 희망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깨진 그릇’도 희망은 있습니다. 자신이 깨진 그릇임을 겸손히 인정하고 새롭게 시작하면 됩니다.

 

삶이 얼마나 신비합니까? 정상인이 장애인이 되면 그때부터 이전에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재능이 발견되면서 신명난 새로운 삶을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처럼 상처입고, 힘들고, 절망의 어둠이 짙을 때가 오히려 영적인 성장의 기회입니다. 믿음으로 수용된 고통은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됩니다. 울면서라도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듯이 깨진 그릇 같은 마음에도 희망의 말로 씨를 심으면 거기서부터 축복의 혁명은 시작됩니다.

 

요즘은 사회도 깨진 그릇 신세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권력의 오만을 경계하고 약자들의 보호에 관심이 많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십시오. 그처럼 비천한 사람들이 처한 자리에 함께 서려고 할 때 그의 머리와 입에서는 말인 아닌 말씀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처럼 말씀을 기준음 삼아 삶을 조율하고 힘써 말씀대로 살면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가장 복된 존재가 될 것입니다.

 

4. 거짓 자랑하지 마십시오

 

본문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 무엇인가 드리겠다고 약속하고 안 지키면 비 없는 구름과 바람처럼 허무한 인생이 된다는 뜻입니다. 결국 현재 주어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 섬기는 것이 “앞으로 어떻게 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화려한 약속보다 낫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약속을 주의하는

것보다 더 주의해야 할 것은 자랑을 주의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싫어했습니까? 의롭게 살려는 태도를 싫어한 것이 아니라 의를 자랑하는 태도를 싫어한

것입니다. 사실 ‘술 담배 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랑을 끊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는 것은 마치

포클레인 앞에서 삽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무슨 자랑할 것이 있겠습니까?

결국 자랑은 하나님 밖에 있을 때 나타나는 믿음 없는 행동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하는 것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남 흉보는 것’과 또 하나는 ‘나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 2가지는 결국 같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기 자랑을 하다가 자랑할 본전이 떨어지면 남을 흉보면서 자신을 올리려는 것입니다. 또한 자랑은 필연적으로 거짓말도 늘게 만듭니다.

그처럼 하나 한 것을 둘 했다고 하면서 허풍과 거짓말이 늘기에 자랑을 주의해야 합니다.

 

인생을 사는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열매 맺기 위해 사는 삶’과 ‘꽃 피우기 위해 사는 삶’입니다. 자랑의 꽃을 피우는 삶에만 관심이 많으면 화류계 인생이 됩니다. 또한 자랑은 갈등을 낳고 당파를 만듭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몇 십 년을 봉사하면서도 “무익한 종입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해야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그처럼 남이 잘하는 것은 최대한 칭찬해주고 자기 자랑은 최대한 절제하는 사람이 주님 중심적으로 사는 복된 성도입니다.

 

5. 오래 참고 말하십시오

 

본문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오래 참았다가

적절한 때에 진지하게 하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는다.”는 말은 온유한 말은 마음의 장벽을 헐어서 결국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할 말을 오래 참았다가

가장 적절한 때에 부드럽게 말하는 사람이 진짜 의인입니다.

 

마리아가 처녀로서 잉태했을 때 남편 요셉은 의인이라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으려고 했습니다.

흔히 의인은 불의를 지적하고 정의를 크게 외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진짜 의인은 먼저 사랑하고 그 다음에 바른 말을 온유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이 없는 바른 말은 먼저 남을 무너뜨리고 그 다음에 자신을 무너뜨리고

결국은 전체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결국 사랑하는 자의 온유하고 바른 말이 진짜 바른 말입니다.

 

요셉이 마리아의 잉태를 누설하지 않고 가만히 끊으려고 한 것은 배우자의 실수를 조용히 처리하고 혹시 헤어져도

상대의 파멸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요셉은 마리아를 사랑했습니다. 얼마나 침착하고 신중합니까?

그처럼 급하게 행동하지 말고 기도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도 어떤 소중한 의미가 있다고 여기십시오.

 

속단은 금물입니다. 삶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 이해합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일을 마음껏

처리하도록 기회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계획보다 더 놀라운 계획을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통해 이루십니다. 결국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나타나 처녀 잉태의 실상을 알려주고 낳을 아들의 이름까지 알려주었습니다.

그처럼 어려움을 묵묵히 참아내고 자기가 할 일만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최선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 미래의 모습으로 말해주십시오 >

 

그처럼 부정적인 말을 참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긍정적인 말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급적이면 아예 침묵하든지 아니면 찬란한 미래를 말해주든지 둘 중의 하나만 하십시오. 지상 최고의 예언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축복의 말을 해주는 것입니다. 현재의 모습은 부족해보여도 계속 믿어주고 계속 축복의 말을 해주면 신기하게 그 말대로 이뤄집니다.

 

미국의 한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회성은 있었지만 산만해서 성적이 바닥이었습니다.

어느 날,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서 발표하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출 전날까지 놀다가 밤에 숙제를 하려고

했지만 산만해서 책을 거의 못 읽었고 결국 독후감도 못 썼습니다. 대신에 책과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써서

다음 날 독후감 대신 그 얘기를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가 그 얘기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좋은 성적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성적을 받아보자 A 플러스였고 성적 밑에 이런 선생님의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책과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했지만 너는 놀라운 스토리텔러의 재질이 있구나! 계속 힘써봐라.” 그 성적을 보고 그 아이는 용기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자기 재능을 개발해 나중에 유명한 영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 선생님의 방법이 바로 예수님의 인물 만드는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실수도 많았고 약점도 많았습니다. 베드로는 성질이 급했고 소리가 컸습니다. 도마는 비꼬는 말이 많은 의심쟁이였습니다. 마태는 교활한 매국노의

대명사였던 세리였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까?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세상의 빛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현재 모습으로

부르지 않고 미래 모습으로 부르며 찬란한 비전을 통해 그들의 미래를 조각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정말로 찬란한 인생을 조각해내며 마침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지금 자녀나 교우들이 부족하게 보여도 그들을 현재의 부족한 모습으로 부르지 말고 미래의 찬란한 모습으로 부르십시오. 사람들은 인생풍파에 의해 이미 많이 얻어맞으며 사는 상태입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스스로 실망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들에게 우리까지 나서서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형제를 참소하는 것은 사탄의 편에 서는 행위가 됩니다. 이제 사탄 편에 서지 말고 하나님 편에 서서 가족과 교우와 친구의 장점과 재능을 격려하며 그들 속에

잠재된 위대함의 씨를 불러내십시오.

 

미국의 한 목사님이 목회하는 곳에는 마약 소지자와 거리의 처녀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형제! 형제는 우리 교회 청년부 전도사가 될 거야. 자매! 자매는 우리 교회 워십팀의 핵심 멤버가 될 거야.” 그렇게 계속 꿈과 비전을 도전하자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로 목사님의 말대로 되면서 그 교회는 과거에 마약 딜러나 갱 출신들이 회개해서 주축을 이루며 훌륭한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 목사님의 성공 비결입니까? 현재 모습으로 그들을 부르지 않은 것입니다. 현재의 모습은 다 알기에 그렇게 부를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믿음으로 그들의 미래를 조각하며 미래의 모습으로 불렀습니다. 그처럼 사람을 선하게

바꾸고 싶으면 그를 수치스런 말로 모욕을 줘서 바꾸려는 전략을 바꾸십시오. 예수님처럼 현재의 부족한 모습 너머를 보고 미래의 찬란한 모습으로 부르고 그 모습대로 조각될 때까지 계속 그렇게 불러주십시오.

 

모든 사람은 자신을 믿어주는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탈선은 대개 천성이 나빠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의 위대성의 씨앗이 발아하지 않아서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찬란한 비전을 도전하는 한 마디의 말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기 가슴에 찬란한 꿈을 불어넣지 않으면 찬란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가족과 교우에게

좋은 말로 그가 사명적인 존재임을 일깨우고 그로부터 위대함의 씨가 발아되게 하십시오.

 

이제 비난과 정죄를 그치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집사님! 하나님은 당신 편입니다. 당신은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제 당신 때가 올 것입니다.” 그처럼 남을 높여주고 비전을 도전하며 자신의 말을 사용해서 찬란한 미래로 나가도록 그를 밀어주십시오. 그렇게 남을 높여주는 말의 씨앗을 심으면 결국은 그 씨앗이 되돌아와 자신도 높여질 것입니다. 항상 축복을 부르는 말로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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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의 고난
 

◎ 찬송가(다같이) : 445장(통일 502장), 439장(통일 496장)
◎ 신앙고백(다같이) : 사도신경
◎ 말씀봉독(다같이) : 욥기 1장 18∼21절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예기치 못한 고난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잘 섬기던 욥에게도 고난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욥은 고난을 통해 더욱이 믿음이 성장하는 유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1. 의인이 당하는 고난
 욥은 하나님에게서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인정받은 사람이었습니다(욥 1:1). 그는 순전한 마음과 하나님 앞에 그릇됨이 없는 올바른 태도로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욥은 자신이 경건했을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무의식중에라도 죄를 범하였을까 하여 자녀들을 위해 번제를 드리면서까지 자녀들의 부정함을 용납하지 않았던 경건의 사람이었습니다(욥 1:4∼5).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던 욥에게 갑작스러운 고난이 닥쳤습니다. 하루아침에 자녀와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온몸에 종기가 나서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어야 했습니다. 아내와 친구들도 그를 정죄하며 비난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은 채, 가장 비참한 자리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욥에게 이처럼 혹독한 고난이 다가온 것은 하나님이 사탄에게 그를 시험하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어서 하나님의 허락하심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욥의 고난의 원인은 사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의인에게도 고난은 다가옵니다. 때때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고난이 다가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까닭 없는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는가?’라는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 속에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의 습관적인 신앙을 깨뜨리시고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로 이끌어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면, 아무리 혹독한 고난이라도 참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고난당할 때 고난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며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2. 고난을 통과하는 자세
 욥은 모든 것이 무너진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거나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야훼시요 거두신 이도 야훼시오니 야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0∼22) 욥은 오히려 땅에 엎드려 ‘주신 분도 야훼시요 가져가신 분도 야훼’이심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환경이 어려워지면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욥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기에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영원한 형벌에 떨어질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귀의 종 되었던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더 나아가 이 땅에서 하늘나라의 기쁨과 평안을 선물로 누리며 살 수 있는 특권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이 닥칠 때 원망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그 고난을 연단의 기회로 삼아 더욱 믿음을 성숙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회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

 3. 고난의 유익
 고난 중에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믿음을 잃지 않으면 고난은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줍니다. 욥은 견디기 어려운 고난을 당하면서도 인내했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야고보서는 인내의 귀중함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 5:11).

 우리의 인생의 바다에 쉼 없이 다가오는 고난의 태풍들도 때로는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줍니다. 고난을 통하여 신앙의 불순물이 제거됩니다. 그래서 고난은 우리를 성결하게 하며, 순수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으나,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연단을 받은 후에야 출애굽의 지도자로 쓰임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도 종으로 팔려가 감옥에서 단련된 후에야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쓰임받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욥은 이전 소유보다 갑절의 복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야훼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야훼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욥 42:10). 욥은 잃었던 물질도 갑절로 받았고, 가정도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를 괴롭히던 중병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140년을 사는 장수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욥 42:12∼13, 16).
 하나님과 관계를 온전히 회복할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 충만한 인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애매히 고난을 당하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고 회복의 때를 기다리며 갑절의 축복을 주실 주님만 바라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간추린 만나
 <의인이 당하는 고난>
1.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
2. 그러나 의인이었던 욥에게도 갑작스러운 고난이 닥쳤습니다.
3. 우리에게도 때때로 고난은 다가옵니다. 그러나 고난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며 인내합시다.

<고난을 통과하는 자세>
1. 욥은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거나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2. 욥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3. 우리도 고난이 닥칠 때 원망 불평하지 말고 자신의 죄와 허물을 회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고난의 유익>
1. 고난 중에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믿음을 잃지 않으면 고난은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줍니다.
2. 욥은 견디기 어려운 고난 중에도 인내했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3. 고난을 통하여 신앙의 불순물이 제거됩니다. 그래서 고난은 우리를 성결하게 하며, 순수하게 만듭니다.

◎ 내 삶의 만나
 <옆 사람에게 인사>
1.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2. 원망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고 찬양합시다.
3. 인내하는 자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립시다.

<기 도>
1. 고난이 다가올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2. 어려움이 다가와도 입술로 범죄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3. 신앙의 불순물이 제거되어 성결하고 순수한 믿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중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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