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찬송가: '예수는 나의 힘이요' 93장(통 93장) 
신앙고백: 사도신경 
본문: 디모데후서 2장 1~6절 

말씀: 오늘은 3·1절입니다. 돌아보고 싶지 않는 우리의 과거 역사가 있습니다. 민족의 아픈 기억인 36년간의 일제시기에 충성되고 자랑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 민족 전체에 자유의 혼과 해방의 용기를 불어넣어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엔 크리스천이 민족의 2%에 불과했습니다. 성경 본문은 세 종류의 삶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첫째, 좋은 군사입니다. 군인의 삶은 명령에 죽고 삽니다. 명령에는 거절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명령에는 거절이 있을 수 없습니다(마 16:24). 오직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을 뿐입니다. 고난도 감수해야 합니다. 군인의 생활은 평탄하지 않습니다.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고 혹독한 훈련을 겪어야 하며, 전쟁 시에는 생명을 내놓고 국민을 위해 싸우는 신분입니다. 영적 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순교를 각오해야 충성된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롬 8:18). 

디모데후서 2장 3절에서 사도 바울은 나와 함께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디모데도 바울의 순교 후 투옥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도 악과의 싸움이므로 많은 고난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고난의 극복을 통하여 성숙된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게 합니다. 

둘째, 경기하는 자로서의 충성입니다. 세상은 경주장과 같습니다. 인생이 태어나는 순간 자기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 경기에 참여한 선수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천성을 향해 달려가는 경주자입니다. 운동경기에서 승리의 면류관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전력투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규칙을 지키는 일입니다. 규칙을 어기게 되면 승리의 면류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음 전파에 있어서도 규칙을 지켜야 하는데 그 규칙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죄의 삶을 벗고 힘차게 달려가야 합니다(롬 13:12). 

셋째, 농부로서의 충성입니다. 우리는 씨 뿌리는 농부요, 이 세상은 밭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우리는 씨앗을 많이 뿌려야 합니다. 복음의 씨를 뿌리되 눈물을 흘리며 뿌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며,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기 때문(시 126:5∼6)입니다.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저를 복음의 농부로 사용해 주옵소서. 세상의 헛된 것에 시간과 물질을 허비하지 않도록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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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는 삶
   
찬송 : '예수 더 알기 원하네' 453장(통 506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에베소서 4장 14∼16절 

말씀 : 인간 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몸이 성장하면서 건강해지고 강해집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서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썼습니다. 이 말은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것에서 벗어나 성숙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 되는 삶입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돼야 성숙하고 장성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겼다면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 되는 삶의 소유자인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많은 지식을 얻습니다. 그러나 볼 수 없는 것과 증명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도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는 알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고 믿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아는 것과 믿는 것이 일치되는 사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삶입니다. 성숙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을 행하지 않고 예수님의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사랑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우선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합니다. 내 어려움보다 상대방의 안위를 중요시 여깁니다. 자신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세계로 들어갑니다. 성숙한 사랑을 행하는 자는 남을 이해하고 너그럽고 이타적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사랑의 자세를 가지고 진리를 전합니다. 이것이 장성한 믿음입니다.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성숙입니다. 셋째, 서로 성장을 도모하는 삶입니다. 본문 16절은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16절)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믿음과 사랑의 성장은 함께 이루어지며 이것을 토대로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숙은 혼자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숙은 상호 영향을 줍니다. 다른 사람의 성숙으로 나도 성숙하게 되고 나의 성숙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일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담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는 서로 도우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소명을 갖고 있습니다. 

기도 : 하나님!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 되는 깊은 신앙의 가정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배우고 그 진리를 서로 말하고 전함으로써 이웃과 상생하는 소명을 깨닫게 하옵소서. 그 소명을 품고 지내는 가정이 되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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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한 가정예배 중요성 : 고상한 그리스도인

찬송 :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289장(통 208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사도행전 17장 10∼15절

말씀 : 사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도 바울에게 베뢰아 사람들의 신실함을 통해 새로운 용기와 기쁨을 주셨습니다. 신사적이며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는 모습이 고상한 그리스도인 아닐까요? 어떤 사람들이 고상한 그리스도인인지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시선이 변해야 합니다. 바울이 베뢰아 사람들에게 신사적이라고 말한 것은 그들의 시선이 세상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진리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상한 사람들의 삶을 보면 그들이 무엇을 바라고 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바라보는 대로 살아갑니다. 믿음을 바라보고 가는 사람은 믿음대로 가고,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고 가는 사람은 긍정으로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통해 마음 문이 열리고 하나님 말씀에 수용적인 자세로 나아간 베뢰아 사람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고상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진리를 알고 진리를 발견하여 이를 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행동을 통해 영향을 줄 때 비로소 신사적인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둘째, 표현이 변해야 합니다. 고상한 그리스도인은 표현이 달라져야 합니다. 세상의 것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사모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어떤 것이든 잘 표현해야 100% 내 것이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며 사는 인생은 표현이 달라지며 삶이 변화됩니다. 분노를 표현하며 사는 사람은 분노의 사람이 됩니다. 반면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며 사는 사람은 고상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감사와 기쁨이 넘쳐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며 표현하게 됩니다. 이러한 고백이 풍성한 사람이 고상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셋째, 마음의 방향이 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마음의 방향이 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주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마음에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임했고, 그들 삶은 강건해져서 어떤 고난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또한 고백하는 우리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표현이 달라져야 합니다. 언제나 말씀에 매어 있는 삶으로 행함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매일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통해 고상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갑시다.

기도 : 하나님,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리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이 더욱 거룩해지게 하옵소서.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따르는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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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코로나 19와 가정예배 진실된 믿음 

브라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신앙은 순종이 따릅니다. 순종은 바로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진실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잘 보이게 된 것은 그의 순종 체질화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첫째, 우상의 도시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할 때 떠났습니다. 그곳은 본토요, 아비 집, 친척들이 있는 곳입니다. 부동산이 있는 곳입니다. 생활의 안정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떠나라 할 때 떠났습니다.

둘째, 번제를 드리라고 할 때 순종했습니다(창 15:9∼11). 시키는 대로 3년 된 암소와 3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여 번제를 드리라 할 때 드렸습니다. 순종했던 것입니다.

세째, 하나님께서 할례를 명하실 때 순종했습니다(창 17:9∼14).

넷째,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라 할 때 순종했습니다(창 21:9∼21). 

다섯째,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바치라 할 때 일언반구의 불평도 없이 새벽 일찍 일어나 모리아 산 까지 가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독자를 바치는 일까지 순종하는 것을 보고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 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창 22:12)고 했습니다.

또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16∼18절)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잘 보이는 비결은 믿음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최선의 것을 드리는 최선의 행위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친 것은 가장 정성스럽게 드리는 믿음의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바치라 할 때 바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는 다 부모가 키워주고, 입혀 주고, 다 부모가 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 달라고 해서 받으면 마음이 흐뭇할 것입니다. 사탕을 한 봉지 사 주고, 다시 그 사탕을 나도 한 알만 달라고 해서 받으면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사탕을 한 봉지 사주고, 하나만 달라고 하는데도 안 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의 믿음을 받으십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 믿음으로 드리는 봉헌, 믿음 안에서의 교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 가족 모두 믿음으로 삽시다. 

믿음으로 봉사합시다. 믿음으로 기도합시다. 믿음으로 드립시다. 하나님께 신실한 믿음으로 잘 보이는 개인, 가족이 되길 기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게 하시고, 예배 중심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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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주의 피로 이룬 샘물’ 266장 (통 200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4장 6∼19절

말씀 : 데이비드 홉킨스는 그의 연구를 통해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큰 힘이 되는 원동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흔히 말하는 기운이 빠지게 하는 것, 사람이 살아가는 데 힘을 쭉 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수치심, 무기력증, 슬픔, 두려움 등이라고 합니다. 

홉킨스는 이렇게 힘이 빠질 때에 다시금 회복할 수 있기 위해서 제3자의 도움, 즉 격려와 인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제3자의 에너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며, 영적 자존감의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고 소개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나름의 열등감을 갖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존감의 회복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신앙생활이 건강하고 바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한 여인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바로 만났을 때에 어떤 회복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유대로 가실 때에 당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를 피해서 돌아가는 것과 달리 사마리아를 통과해 가셨습니다. 4절 말씀을 보면 목적을 가지고 사마리아를 경유하여 지나가기로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여인은 모두가 낮잠을 자거나 쉬는 시간에 홀로 등장하여 물을 길러 옵니다. 이 여인은 사람들을 피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우물가에 다른 여자들은 없고 이 사마리아 여자 혼자뿐이었을까요. 매일 쓸 물을 길어 나르는 것은 당시 여자들의 중요한 일과였습니다. 여자들은 아침저녁으로 물이 차가울 때 물을 길었습니다. 그때 서로 교재를 나누게 됩니다. 그런데 더운 한낮에 혼자 물을 긷기 위해 나왔다는 사실은 그녀가 따돌림을 받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9절) 예수님께서 물을 달라 하실 때에, 이 여인은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거느냐고 말을 하는 것을 볼 때 혈통적 열등감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열등감을 갖고 있던 여인이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예수님을 알아가고 그분을 만나갈수록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10절)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만날 때 회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열등감이 회복될 때 이 여인에게 나타난 현상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예배의 회복입니다. 둘째는 전도의 회복입니다. 예배에 대한 갈망과 사람들을 피해 다니던 여인이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와 보라”고 외치는 회복의 역사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주님을 만날 때에 바로 영생하는 샘물을 마실 때에 이러한 회복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을 믿되 바로 믿는 나의 삶이 돼 주님께서 주시는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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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365::죽으면 죽으리이다 코로나19때 가정예배

 
찬송 :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580장(통 371)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에스더 4장 8∼17절

말씀 : 오늘은 현충일입니다. 정부에서 현충일로 지정한 1956년 6월 6일은 때마침 망종(芒種)이었습니다. 망종은 24절기의 하나로 농경사회에서 곡식의 종자를 뿌리는 가장 좋은 때로 여겼습니다. 역사적으로 망종에는 나라를 지킨 영웅들에 대한 예를 지키는 행사가 진행됐다고 합니다. 현충일은 애국선열을 비롯해 한국전쟁으로 40만 이상의 국군이 순국한 것을 추모하는 날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위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믿는 우리들은 시대의 징조에 무감각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을 보면 하만의 계략에 의해 유다민족이 진멸 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모르드개는 이 위기를 왕비가 된 에스더에게 알렸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16절)라고 결단하고 왕 앞에 나가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로 인해 유다민족이 전부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민족을 살리기 위해 모르드개가 했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에 4:13)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홀로 살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하며 함께 힘을 합쳐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국민으로서 우리는 자신과 가족의 욕심만 채워서는 안 됩니다. 국가가 어려울수록 함께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에스더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에스더는 유다인들에게 함께 금식기도를 할 것을 제안합니다.(16절) 어려울 때 함께 하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금식기도는 묶인 것을 푸는 열쇠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 에스더와 유다인들의 금식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만의 흉악한 결박을 풀었습니다. 

셋째는 국가와 민족이 어려울 때 에스더의 용기를 본받아야 합니다. 독립운동가 안창호 선생은 평소에 4대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첫째는 무실(務實·진실을 실천하자)이며, 둘째는 역행(力行·스스로 힘써 행함을 보이자)이고, 셋째는 충의(忠義·옳은 일이면 내게 이롭건 불리하건 끝까지 성실하자)이며, 넷째는 용감(勇敢·용기가 있는 인간이 되자)입니다. 안창호 선생은 나라가 어려울 때 용감한 국민이 될 것을 강조했으며 본인 또한 그렇게 살았습니다. 에스더의 용기는 왕의 규례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용감함이 유다백성을 구한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이 어려울 때 함께 금식하며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도 에스더처럼 죽음도 불사하는 호국(護國)의 용기를 잃지 맙시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 하나님, 대한민국의 위기와 고비마다 피할 길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애국선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날마다 이 민족이 하나 되게 하옵소서. 애국선열들의 가족과 그 후손들에게 자긍심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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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 용서 †사순.고난,부활,자료


찬송 : ‘그 참혹한 십자가에’ 269장 (통 211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성경 : 사무엘하 19장 21~22절

말씀 : 우리는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에 이성보다 감정이 훨씬 더 우리 삶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 미움을 걷어내고 용서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용서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주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때 자신을 팔아먹은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왔습니다.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형들을 용서합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고 말씀하시고 빚진 자의 비유로 용서해야 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죄 사함의 용서를 받은 우리들이 형제를 용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스테반 집사는 유대인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 기도합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9∼60)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하나님께서는 죽을죄를 지은 우리들을 용서하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시므이가 압살롬을 피해 도망가는 다윗을 저주합니다. 아마도 이제 다윗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승리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시므이는 급히 다윗 왕 앞에 나와 19∼20절에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라고 자기의 죄를 고백하면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를 본 아비새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21절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아비새의 말은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22절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고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다윗은 용서합니다. 우리는 항상 남을 용서하기 전에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용서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용서하는 것이 십자가처럼 느껴지면 달게 짊어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기도 : 우리의 죄를 사랑으로 덮어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기만 하면 용서해주시는 은혜를 힘입어 오늘도 살아갑니다. 그 사랑, 그 은혜 잊지 않고 사랑으로 용서하며 살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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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 오늘의 가정예배 > 은총의 좁은 문

자료원 : 국민일보 23면

구 절 : 눅 13:24

 

찬송 : 318장

묵상 : 잠언 16:1-3(구약926쪽)

사도신경고백

찬송 : 270장

기도 : 가족중

 

본문: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누가복음 13:24)


말씀:넓은 문을 지나 넓은 길을 가는 인생은 마침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지만 좁은 길을 따라 좁은 문을 지나는 사람은 그문을 지날 때

마다 천국의 세계가 환하게 다가옵니다.


그 첫째 문은 그리스도의 문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습

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사도행전 4장12절은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

라]고 단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좁은문을 어떻게 들어갈 수 있

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생의 목표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두며 예수님 중심으로 나갈 때 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

다.


둘째 문은 성령의 문입니다. 성령의 문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

신 성령세례를 받고 마음 속에 성령충만하여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

게 하는 것입니다. 이 문을 지나면 하늘나라 영광 길은 더 넓어지고 천국

의 광채는 더 환해지며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이 마음 속에

넘치는 것입니다.


셋째 문은 성결주의의 문입니다. 성령충만하여 나아가면 그 다음에는 성

결하게 하는 문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8절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성결의 문을 지나

는 사람은 추하고 음란하고 더러운 자리에 같이 앉 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서 성결케 함으로 하나 님과 대화하고 주 안에 깊이

들어가려고 합니다. 성령충만함으로 용기 를 얻어 이 문을 들어선 사람에

게는 전에 체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계시와 권능을 받아 은혜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좁은 길의 마지막 문은 (그 발 앞에 엎드리는 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전적으로 의뢰하고 순종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세상적으로 보

기에는 바보스럽고 미련하고 아무것도 없는 생활 같지만 그 마음 속에는

하늘나라의 화평이 넘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소유한 사람

에게 천국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좁은문을 지나 좁은 길로

가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살

게 되는 은총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 : 사랑의 주님, 저희가 고통스럽고 어려워도 오직 주님만 좇3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시고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

멘.


통성기도 : 교회와 목회자를 위하여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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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행복 비결은 가정예배입니다.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6절)

카네기의 인생론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환경을 바꿔라. 그래도 안 되면 관계를 바꿔라. 그래도 안되면 나를 바꿔라.” 인생 모든 문제의 궁극적인 요인은 바로 내게 있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가정,그 행복의 비결 역시 내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복된 가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확실한 믿음에서 출발하십시오(6절). 부부는 우연히 눈이 맞아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지금의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나의 천생연분임을 믿고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이혼에 관하여 질문을 받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전통이나 시대의 문화로 답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문제를 풀어주십니다(5절). 가정에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서적 가정생활을 위해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정기적으로 가정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복된 가정은 부부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가정 안에 성소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마치 쉼표와 같아서 우리의 인생과 가정에 쉼과 안식을 줍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부부와 자녀들의 심령에 부어주시는 쉼과 평안,이해와 용서,사랑과 순종으로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난센스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17장이나 빽빽이 쓴 편지를 누군가에게 보냈습니다. 봉투에는 이런 경고문이 쓰여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편지를 읽는 자는 죽을 것임.” 하지만 편지를 받은 사람은 호기심에 편지를 읽고 맙니다. 그런데 정말 편지를 다 읽자마자 그는 죽고 말았습니다. 왜일까요? 17장이나 되는 글에 쉼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스갯소리입니다만 깨닫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사업에,그리고 가정에 쉼표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쉼표 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헉헉거리다가는 곧 지쳐 쓰러지고 맙니다. 예배야말로 우리 가정의 쉼터요,안식입니다. 예배드리는 자에게 안식,평안,강건,자유,승리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복된 인생,복된 가정을 위해 환경을 바꾸십시오. 안 되면 관계를 바꾸십시오. 그래도 안 되면 자신을 바꾸십시오.

 

무엇보다 인생의 쉼표,예배를 정기적으로 드리십시오. 가정의 행복은 사랑의 테크닉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시 127:1,2).

 

기도: 주님,우리의 가정이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을 확신하고 무슨 일이든 성경에서 해답을 찾는 믿음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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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실패한 가정에 부으신 은혜


 

찬송 : ‘큰 죄에 빠진 나를’ 295장(통 417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룻기 1장 1~17절

룻기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한 가정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를 이뤄가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셨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떡집이라 불리던 베들레헴조차 식량이 거의 없게 된 것은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방종함을 고치기 위해 하나님께서 드신 무서운 징계의 수단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람에게 어떤 문제가 생길 경우 무작정 그곳을 떠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으로 주신 땅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흉년이 들자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는 뜻의 엘리멜렉과 ‘즐거운’이라는 뜻을 가진 나오미가 병약한 두 아들을 데리고 베들레헴에서 요단 건너편에 있는 모압 지방으로 이주했습니다. 식량이 귀하던 이스라엘과 달리 이 시기에 모압에는 식량이 풍족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식량을 좇아 떠날 것이 아니라 성도는 나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가 어떤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역시 하나님께서 엘리멜렉의 가정을 축복하지 아니하시므로 모압 땅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사를 주도한 남편이 먼저 죽게 되자 절망적인 나오미는 두 아들을 모압 여자와 결혼시켰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아들마저 죽어버리고 나오미 자신과 두 모압 여자 며느리만 남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육신의 정욕을 좇아 사는 존재에서 오직 그리스도를 섬기는 존재로 변화된 성도라면 겹치는 어려움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올바로 깨달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실패했을 때 하나님의 약속한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은혜롭게 돌보심으로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들은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함께 다시 유다 땅으로 가고자 나섭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오미가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고 두 며느리에게 “친정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결국 오르바는 모압으로 돌아갔으며,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놓치지 않고 꽉 붙잡고 따라갑니다. 룻이 시어머니를 결사적으로 붙들었던 이유는 그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세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무도 룻이란 이방 여자를 몰랐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를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여인 룻을 축복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흉년을 준비하실 뿐만 아니라 한 가정의 실패조차 허용하셨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기도 :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실패한 가운데서도 말씀으로 깨닫고 돌아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룻처럼 보아스를 얻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먼저 하나님 편에 서기로 결단하는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이에스더 목사<요나3일영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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