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와 특별헌금

- 이광호 목사 -
 
[다양한 형태의 절기 때 마다 특별헌금 제도를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절기와 연보를 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절기와 연보를 연관지어 말하는 것은 어린 성도들을 잘못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시대에는 다양한 기독교 절기들이 보편화되어 있다. 한국교회에서는 부활절, 맥추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지키는 교회들도 있으며 절기는 아니지만 송구영신예배, 신년예배 등을 절기화하기도 한다. 한편 외국의 교회들 가운데는 오순절을 중요한 절기로 지키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신약시대에 특별한 절기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두 말할 나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한국교회들은 절기를 활상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다양한 절기의 특성에 따른 종교적 행사화를 추구함으로써 외형상의 활기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이는 참 교회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연스런 신앙성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코 정상적이라 하기 어렵다. 인간들의 이성과 경험을 배경으로 한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해 교회의 활성화를 추구한다면 불건전한 세속화의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

 
나아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보다 심각한 문제는 절기를 헌금과 연관 짓는 그릇된 태도이다. 절기의 활성화를 통해 교회의 재정을 확충하려고 한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그것은 긍정적인 자세로 절기를 지키려는 자들의 순수한 마음마저 혼탁하게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기독교 지도자들 가운데 다수는 이런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한국교회의 어그러진 실상이다. 분명한 점은 우리 시대에는 다양한 절기헌금들이 적극적으로 장려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중의 기독교 백화점이나 서점에 가면 아예 다양한 절기헌금을 위한 특별봉투들이 즐비하게 마련되어 있다. 대다수 교회들은 다양한 절기에 따라 그 절기헌금 봉투를 교인들에게 돌려 연보를 하도록 유도한다.
 
 
현대 한국교회 가운데는 구약의 맥추절을 도입해 지키는 경우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순진한 교인들로부터 연보를 거두어들이기 위한 또 다른 하나의 방편을 도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숱하게 많은 구약시대 절기들 가운데 유독 맥추절만 찾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교회 중에 유월절과 장막절, 부림절, 수전절을 지키는 교회가 없는 것을 보면 그에 대한 의도가 무엇인지 쉽게 짐작하고도 남는다.

 
만일 다양한 절기를 지키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려면 교회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회가 그러한 절기들을 지키면서 올바른 신앙정신을 이어받고자 한다면 우선 헌금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돈이 절기에 개입되지 않아도 얼마든지 그 정신을 살릴 수 있다. 정확하게는 절기를 통해 헌금을 거두려는 자세가 그 원래의 정신을 받아들이는 데 방해요소가 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교회가 절기를 통해 헌금을 거두고자 한다면 그 순수성은 사라지고 만다.
 
 
각양 절기들 뿐 아니라 그에 준하는 계절에 따른 특별헌금 봉투가 사라질 때가 오기를 바란다. ‘부활절 헌금’, ‘맥추절 헌금’, ‘추수감사절 헌금’, ‘성탄절 헌금’, ‘신년헌금’, ‘송구영신헌금’......... 이렇듯이 절기헌금을 장려하면서도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연보하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라 할 수 없다.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제 절기를 헌금과 관련지어 교인들을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 절기를 맞았을 때 그와 연관된 글귀를 적은 헌금봉투를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회의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절기를 적당하게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 소위 성의껏 연보를 해야만 절기를 잘 지키는 것이라는 인식은 사라져야 한다. 교회의 올바른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는 잘못된 전통을 과감하게 버릴 필요가 있다.

 
 
 
 
 
 
 
 
 
- 교회와 성경
 

블로그 이미지

헤나메오

영화,음악,여행은 경제로 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