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 성령강림절설교] 성령 받으라

 

 

 


제목 : 성령이 충만할 때

말씀 : 행7:54~60

 


1.왜곡된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인도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러디어드 키플링이라는 사람의 작품 중에 정글북(The Jungle Book, 1894)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만화영화로 제작(1967년)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인데요,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인도의 정글을 탐사하던 한 부부가 아기를 잃어버려 정글 속에 혼자 남겨지게 되었는데 흑표범 바기라에게 구출되어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게 됩니다. 늑대들은 이 아이에게 모글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정글의 법칙을 가르치며 양육하여 모글리는 늑대인간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모글리가 소년이 되었을 때 평화롭던 정글에 인간을 극도로 싫어하고 포악하기 짝이 없는 호랑이 쉬어칸이 나타납니다.

그러자 늑대들은 모글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인간 마을로 돌려보내려고 하지만 이미 동물과 같은 삶에 익숙해져 있었던 모글리는 정글에서 살고 싶어서 도망쳐 버립니다. 그러자 쉬어칸이 모글리를 해치려고 찾아다니는데 다행히 회색곰 발루의 도움으로 모글리는 위험에서 벗어나 결국 인간 마을로 돌아가 부모를 만나 한동안 살게 됩니다.

그러나 정글에서는 폭군 쉬어 칸이 횡포가 점점 심해져 동물들이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마을까지 내려와 가축과 사람을 물어가는 만행을 저지르자 모글리는 다시 정글로 돌아가 쉬어칸을 해치우고 정글의 영웅이 되어 평화로운 정글을 만듭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다시 인간마을로 돌아와 인간의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여러 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서로 속이고 빼앗고 싸우고 죽이는 등 힘 있는 자들의 탐욕에 의하여 저질러지고 있는 사회악에 대한 경종을 울리며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협력하는 곳에 행복이 있음을 보여주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이러한 일반적인 교훈 말고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글리는 왜 늑대인간으로 살아야 했는가 하는 것과 왜 인간들은 그렇게 끊임없는 탐욕 속에서 서로 속이고 빼앗고 죽이고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유는 간단합니다. 환경 때문입니다. 모글리는 늑대와 함께 늑대들이 생활하는 것을 보고 듣고 배웠기 때문에 늑대인간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속이고 싸우고 빼앗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와 무지 속에서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기쁨과 행복이 있는 양 착각하며 살아가는 왜곡된 세상에서 그러한 어둡고 왜곡된 세상을 보고 듣고 배우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물질만능주의적인 왜곡된 인생관을 가지고 눈에 보이는 것들에 인생의 초점을 맞추고 살고 있기 때문에 온갖 부조리와 불의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너무나 왜곡된 가치관이 팽배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어 기도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우리도 자칫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이 옳은 것인 양 착각하며 그 쪽으로 끌려가기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롬12:2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같이 보겠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세상이 너무나 왜곡되고 부패되고 혼동 속에 빠져 있으므로 그것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주의 성령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고, 온전하게 하여 하나님을 따라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진정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세상에 얼마나 왜곡된 가치관이 팽배해져 있는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말씀 묵상하며 주님의 뜻을 바르게 깨닫고 오직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잘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 안에 있는 그 영원하고도 진정한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마음껏 누리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습니까?

2.성령충만하면 모든 것을 이기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충만해야 죄와 무지가운데 육신의 욕망을 끌려 살아가지 않고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축복의 길을 바르게 알고 그 길로 달려가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게 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성령은 생명의 영, 진리의 영, 은혜의 영, 능력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 받으면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축복의 길을 바르게 알게 되고, 깨닫게 되고 더 나아가서 그 길로 갈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생명의 길로 갔던 스데반집사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55절을 보겠습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여러분,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영광스러운 하나님과 하나님 우편 서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과 그 우편에 계신 주님을 보았다니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굉장한 일입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때가 언제입니까? 행7:58절을 보겠습니다.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그러니까 이때는 스데반집사가 복음을 전한다고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붙잡아다가 공회에 세우고 거짓 증인들을 세우고 모함하여 이 사람을 죽이려고 할 때였습니다. 그러자 스데반이 변론을 하였으나 그들은 도리어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며 죽이려고 덤벼들어 결국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고 맙니다. 이와같이 복음을 핍박하고 대적하는 자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기 직전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은 이 때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었고, 자기를 죽이려고 돌로 치는 자들에 대하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순교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행6:15절을 보면 이 변론이 있기 전에 그가 공회에 앉아 있을 때에 보니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스데반 집사님은 공회에 붙잡혀 와서 자기를 죽이려고 협박하는 상황에서도 얼굴이 천사처럼 될 수가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하늘을 우러러보며 천국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자신을 죽이기 위하여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하여 도리어 기도할 수 있었겠습니까?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의 전 인격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생명의 영, 진리의 영, 은혜의 영으로 가득 차니 근심이나 걱정이나 불안도 사라졌습니다. 눈 앞에 다가온 죽음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도 없었고, 자기를 죽이려고 돌을 던지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원망도 사라지고 도리어 그들이 불쌍하고 가련해져 그들을 향해 저주나 욕설을 퍼붓지 안하고 도리어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분명한 것은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유혹도 미움도 원망도 증오도 불평도 다 이기게 됩니다. 환경도 상황도 마귀사탄도 핍박도 다 이기게 됩니다. 자신의 약하고 부족한 것도 이기게 됩니다. 세상의 어둡고 더러운 것들이 덤벼들지도 못하고 설령 덤벼들어도 성령의 능력으로 단번에 물리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행1: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비겁하게 숨고 부인하고 도망갔던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의 능력을 덧입자 목숨을 바쳐 주의 복음을 전하는 능력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묵상하며 주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능력과 지혜와 인도하심으로 세상의 모든 약하고 추하고 더럽고 악한 것들과 세상의 모든 상황과 환경과 조건을 이기고 승리하며 주님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며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성령충만하면 밝게 빛나는 인생이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능력있는 삶이 될 뿐 아니라 그 인생이 밝게 빛나게 되어 있습니다. 행6:15절을 보겠습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성령충만한 스데반은 그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천사의 얼굴이 어떻습니까? 아름답고 밝게 빛나고 깨끗하고 순진하고 선한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당시 스데반집사님은 만사형통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도리어 공회에 잡혀 와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천사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생명의 영, 진리의 영, 은혜의 영, 평강의 영, 능력의 영, 기쁨의 영이신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그렇습니다. 성령이 그를 사로잡음으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시고 모든 상황과 환경을 넉넉히 이기게 하시고 그 심령속에 평안과 기쁨으로 채워주셨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도 얼굴에 빛이 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밝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얼굴에 웃음이 있고, 말도 밝고 긍정적이어야 하고, 찬송도 기왕이면 밝고 힘차게 하고, 여하튼 모든 영역에서 밝게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떤 분들은 속으로 ‘아이구 목사님 뭐 좋은 일이 있어야 기쁘게 살지요. 촌에서 무슨 그렇게 좋은 일다고 기쁘게 즐겁게 삽니까? 형편도 상황도 조건도 뭘 그렇게 좋다고 항상 웃으며 삽니까?’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오늘 말씀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님만 하겠습니까? 우리 인생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어도 사도바울만 하겠습니까? 스데반 집사님과 바울 사도나 우리들의 삶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핍박과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스데반 집사님의 얼굴은 천사처럼 빛났습니다. 바울은 수없이 매를 맞고 돌에 맞아 죽을 뻔하고 감옥에 갇히고 바다와 강에서 고난을 당하고 강도를 만나고 춥고 배고프고 헐벗고 질병까지 있었지만 항상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빌2:17절에서는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살전5:16~18절에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15:11절에서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까? 영광의 나라가 있지 않습니까?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습니까? 주님이 기뻐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성령님이 인도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마땅히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갈때에 주님이 얼마나 흡족해 하시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탄식하고 원망하고 슬퍼하고 뭔가 그늘진 삶을 살아간다면 주님이 얼마나 안타까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축 쳐져서 감사와 기쁨도 모르고 탄식하고 원망하고 무언가 한이 맺힌 것처럼 살아간다면 그런 자녀를 바라보는 여러분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얼굴이 밝아야 합니다. 성령안에서 얼마든지 그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속에서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그런 삶을 살 수 있고, 그런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내가 행복합니다. 내 가족이 행복합니다. 이웃에게 기쁨을 주고, 교회를 밝게 만들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그러면 전도도 저절로 됩니다.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면서, 불평 불만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져서, 사람이나 사회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얼굴이 사나와져서 전도를 한다면 누가 그 전도를 받아들이겠습니까? 아니 자기 자신이 기쁨이 없는데 무슨 천국을 말하겠어요. 원망과 불평 탄식 비판하면서 무슨 하나님 나라를 말하겠습니까? 평안과 기쁨도 없이 살아가면서 무슨 천국이 있다고 전도를 하겠습니까? 여러분, 먼저 내가 기쁘게 밝게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러면 입으로 전도하지 않아도 전도가 됩니다.

여러분, 정말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기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하는 삶은 결코 상황이나 환경이나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면 상황과 조건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삽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조건이 좋고 환경이 좋아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짐으로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찬양하면서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함으로 여러분도 행복하고 남에게도 행복을 주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만드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성령충만하면 위를 바라보는 인생이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위를 바라보는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5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그가 성령이 충만하였을 때 어디를 보았습니까?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위에 계신 하나님, 그 영광스러운 나라를 바라 본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영광스러운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다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보여주셨다니 얼마나 영광스럽고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빛나는 모습이었습니까? 이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셨으니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세상에 무슨 미련이 그렇게 남겠습니까?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에 대한 무슨 미운 감정이 생기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스데반을 죽이려고 이를 갈며 덤벼들었지만 스데반은 너무나 평안하고 행복했습니다. 이제 곧 이 죄많고 어둡고 혼탁한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저 영광스러운 품에 안길 것을 생각하니 그저 감사할 것 뿐이었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나라를 보지 못하고 죄와 무지와 미움 속에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이 동족들이 너무나 불쌍하고 너무나 안타까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래서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주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면서 기뻐하면서 영광스러운 주님 품으로 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위를 바라보면 문제는 끝납니다. 문제는 아래를 바라보기 때문에 생깁니다. 실상 따지고 보면 정말 별거 아닌 땅엣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상황과 환경과 조건을 바라보고, 땅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래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땅엣 것은 본래 문제가 많습니다. 부족합니다. 연약합니다. 죄와 무지 가운데 있습니다. 나도 너도 상황도 환경도 조건도 인간도 동물로 식물도 자연도 다 온전치 못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많습니다. 진정한 생명과 기쁨과 만족과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도리어 점점 우리를 옭아매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시기와 질투를 유발시키고 서로 속이고 빼앗게 만듭니다. 그래서 행복은커녕 점점 더 갈등과 고통과 아픔과 불평을 야기 시킬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골3:1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이제는 죄와 무지속에 있는 세상을 바라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소망과 목적과 위안거리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망과 낙심과 불평 밖에 남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 안에, 영광의 나라에 우리의 진짜 소망과 위로와 평안과 기쁨과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위를 보시기 바랍니다. 무언가 상황이 꼬이는 것처럼 여겨질 때 위를 보시기 바랍니다. 무언가 좀 미운 마음이 생기려고 할 때 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무언가 절망감이 찾아오려고 할 때 위를 보시기 바랍니다. 무언가 세상이 원망스럽고 불평 불만이 찾아오려고 할 때 위를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계신 곳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히 주님이 위로부터 내려오는 위로와 평강과 기쁨과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금 힘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고 기쁨이 생길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소망가운데 즐거워하면 영광의 나라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밝게 기쁘게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죄와 무지속에 있는 세상, 약하고 부족하고 허물 많은 인생, 썩어 없어질 것들이 있는 땅엣 것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를 위하여 예비된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총과 소망과 지혜와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상황과 환경과 여건을 이기고, 모든 부정적이고 칙칙하고 어두운 세력들과 모든 미움과 원망과 불평도 이기고 주님 안에 있는 빛과 같은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는 진정으로 생기가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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