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주일 예배 기도문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귀하고 귀한 성도들을

주의 전으로 인도하시고

함께 예배 드리게 하심을

감사드리며 찬양을 드리나이다.

 

고난 주간에

드리는 이 예배를 통하여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피 흘리신 고통을 깊이 묵상하며

 주님에 깊고 넓으신 사람에

감동을 받는 시간 되게 하옵소서.

 

지난 일 주일동안

 하나님에 축복속에 살면서도

 우리가 깨달지 못하

고 주님에 뜻에 행하지 못했던

 거짓과 탐욕과 비판과 시기들을

 이 시간 고백하오니

 주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세우신 사랑하는 종을 기억하시고

축복하셔서 전하는 모든 말씀이

우리들에 양식이 되게 하시고

 성령이 임하셔서

영육에 강건함도 주시고

 마치는 시간까지

충만하게 하옵소서.

 

듣는 우리들에게 들을수

 있는 귀가 열리게 하시고

 메마른 심령들이 성령에

 단비에 흠뻑 젖게 하시옵소서.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셔서

 하나님이 사용하시고자

하는곳에 귀히 쓰이게 하옵소서.

 

믿음을 반석에 세우셔서

 사단에 유혹도 이단에 미혹도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기도와 찬양으로

살게 하시며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에

 오묘한 샘물을 발견하게

 하여 주옵소서.

 

전도와 선교와

제를 힘쓰고 기쁨으로

사랑함으로 감사함으로

행할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에 말씀이라면

 아멘 할수 있는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선우 교회를 아름답고

 축복된 교회로

 세워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헌당예배를 기대하며

기도하오니

솔로몬에게 건축을 맡기시고

다윗에게 많은 것을

준비케 하신것처럼 

 

oo교회에 건축과 재정과

 선교 위에 많은 물질이

 준비되며 채워 주시옵소서.

 

우리가 아닌 하나님께서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빈자리가 있사오니

 주님 앞에 귀히 쓰일 봉사와

헌신과 겸손과 인내로 충성되고

 합당한 자들이 채워지게 하옵시며

 00교회가 날로날로 성장하는

 아름답고 거룩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누구든지 머물고

 누구든지 들어오게 하시고

누구든지 기도하게 하시며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며

 우리가 무엇을 아프게 하는지

 아시는 사랑하는 주님!

 


이 교회가

 만민이 기도하는 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각 기관들을

 축복하시고 주의 뜻에

기쁨과 영광이 있게 하시며

파송한 선교사와 돕는

선교사들을 기억하시고

이들이 전하는 곳곳마다

 하나님에 나라가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일학교 교사들

위에 함께 하시고

신령한 은사를 주셔서

온 맘과 정성으로 인도하여

사랑으로 감싸게 하시고

 어린 생명들이 일평생

 주님에 끈을 놓치지 않게

 늘 동행하시고

 붙잡아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민족을 축복하시고

 갈라진 남과 북을 하나로 세워주시고

 경제와 국력을 회복 시켜 주시고,

믿음에 대통령을 세우셨으니

 교만해지지 않고 바르고

 참되게 이끌게 하옵소서.

 

모든 위정자들 위에도

주님에 사랑을 베푸시어

권력과 물질에

힘으로 행하기 보다는

 요셉이 행한 것처럼,

다니엘이 행했던 것처럼

바르고 진실되고 정의로

 세워나가게 하시옵소서.


대 심방을 통하여

은혜를 받게 하시고

가정에 형편을

회복시키심도 감사드립니다.

 

남은 모든 가정 위에도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참여하지 못한

 성도들을 위로하시고

 주님께서

 친히 돌아올수 있는

 마음을 주시어 다시금

회복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예배를 돕는

성가대의 찬양을 받아 주시옵고

우리에 모든

 무거운짐을 내려 주시고

 은혜와 사랑을 풍성히

 누리는 시간되게 하옵소서.


모든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시간 되게 하옵소서.

 

영광을 받아 주시기를 원하오며

 마치는 시간까지 함께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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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passion week) : 주일예배대표기도문

 

 


고난주간 예배 대표 기도문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내주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고난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성도들이 거룩한 주님 앞에 나와 고난당하신 그 모습과 의미를 생각하며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우리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치던 군중들을 욕할 줄은 알면서도 우리 자신은 주님의 고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안일하게 평안만을 추구하면서 아직도 주님을 십자가 위에 그대로 버려두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파렴치한 죄인들입니다.

 

  주님께서 고난당하신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자신의 구원과 행복만을 취해 아귀다툼하는 우리의 가련한 모습을 주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고난당하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무책임하게 눈만 껌벅거리며 주님의 고난을 구경하다가 그 결과로 베풀어지는 축복에만 참여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상처를 아파하고 주님의 죽으심을 심령 깊이 안타까워하며 우리의 모든 죄악을 진정으로 괴로워하면서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다시는 범죄 하지 않고 주님의 뒤를 온전히 따르기로 결단하게 하옵소서! 실지로 주님처럼 십자가에 달리지는 못했어도 못내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을 구르고 가슴을 쥐어뜯고 눈물을 흘리며 주님의 고난의 현장을 벗어나지 않은 신실한 여인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이 고난 주간을 통회하며 보낼 수 있게 하옵소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는 이 땅에 참 평화와 화해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으니 우리도 주님의 뜻을 생각하며 살게 하시고, 우리 성도들이 서로 화평을 이루게 하시며 다툼이나 이기적인 마음이 없이 온전한 성도의 교제를 나누게 하옵소서!

 

  자신의 행복과 안일만을 추구하며 주님의 십자가를 외면하려는 우리들의 속된 심령을 성령의 능력으로 뜨겁게 변화 시키사 죄에서 해방되지 못한 이 나라 이 백성을 위하여 한 알의 밀알이 되게 하소서!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에도 서로 분열되어 반목하는 교회들이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서로 화목하고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이 시간에 드리는 이 예배가 형식적인 것이 되지 않게 하시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주님의 고난을 나의 고난으로 받아들이는 귀중한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이 시간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목사님 강단에 세우셨으니 하늘의 능력을 베풀어주셔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대언하실 때 아멘으로 화답함으로 모든 기도의 제목이 응답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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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설교] 고난주간의 십자가의 사랑

 

 


 


제목 : 사랑의 십자가

말씀 : 마27:38-44

 


1.우리의 저주를 대신한 주님의 십자가

 


여러분,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사실은 저주의 상징입니다. 끔찍한 고난의 상징입니다. 그러면 왜 그런 저주받은 십자가가 교회의 상징이 되었습니까? 말할나위없이 우리의 저주를 대신한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받은 죽음을 당하심으로 우리가 지옥의 저주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고전1:18에서는 말씀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 즉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저주받은 죽음을 당하시는 것만이 우리를 모든 죄와 사망과 지옥의 권세에서 건져주는 유일한 능력이요 힘이요 지혜라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무슨 다른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다른 방법이 있다면 예수님인들 왜 십자가를 지고 싶으셨겠습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셨기에 그 저주받은 십자가의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다른 무슨 방법으로 인류의 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돈으로 할까요? 지식으로 할까요? 과학으로 할까요? 윤리도덕으로 할까요? 다른 어떤 방법도 없습니다. 오직 죄없고 흠 없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만 죄를 용서 받을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걸 모릅니다. 아니 자신들이 죄가운데 있다는 사실 조차 모릅니다. 다 자기가 잘나고 똑똑하다고 옳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죄와 무지가운데 있다는 사실은 새까맣게 모르고 천국이 있네 없네, 아무거나 믿으면 좋은 데 가네 마네하며 떠듭니다. 누구 맘대로 그럽니까? 참 안타깝고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요. 그러니 반대로 이 놀라운 생명의 비밀을 알고 믿고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된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영광입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나같은 죄인을 위하여 그 저주받은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신 주님을 온전히 모셔 들이고 감사와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돌려드리며 겸손히 동행할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며 주님의 영광 나타내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렇게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이 놀라운 은총을 입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2.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의 은총을 받은 우리는 죽을 때까지 감사하고 영광돌리고 찬양해야 하는 것을 말할 것도 없고 동시에 죄를 미워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 놈의 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까? 그 놈의 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아픔과 상처를 받고 있습니까? 그래서 그 놈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그렇게 참혹한 죽음을 당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어떻게 죄를 가까이 할 수 있습니까? 얼마나 죄를 혐오하고 멀리해야 되겠습니까? 정말 그렇잖아요? 그 놈의 죄 때문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옥가게 되고 지금 여기서도 아픔과 상처와 고통을 받게 되고 그래서 주님이 우리가 받을 벌을 대신 받으시려고 그 끔찍하고 참혹한 죽음을 당하셨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 흉악하기 짝이 없는 죄를 가까이 할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하면서 좀 걱정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끔찍한 죽음을 당하심으로 생명을 얻었는지를 망각하고 마치 구원이 거저 얻어진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구원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지 못하니까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죄에 대하여 무감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거저 얻어진 것은 귀한 줄을 모릅니다. 귀한 줄을 모르면 감사할 줄도 모르고 또 가치 없이 막 써버립니다. 그래서 부자집 자녀들은 돈 귀한 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르고 흔전만전 써버리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우리가 얻은 이 영원한 생명이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주어진 것인지를 알면 절대로 우리가 얻은 구원을 조금이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거나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여 죄를 가까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짜 안 그래요? 여러분, 여러분은 온갖 썩은 냄새와 똥냄새가 풀풀나고 구더기가 들끓는 그런 더럽고 추하고 혐오스러운 곳을 가까이 하겠습니까? 또는 사자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으르렁거리며 대드는데 그곳으로 가까이 가겠습니까?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도망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죄는 이보다 더 더럽고 악하고 사납고 흉악한 것인데 어찌 그것을 가까이 하겠습니까? 그래서 약4:8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사순절 특별히 오늘 고난 주일을 맞이하여 먼저 그 저주받은 죽음을 당하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주신 주님께 정말 감사와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돌려드리며 동시에 정말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고 오직 주님을 가까이 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풍성한 은혜가 넘쳐나는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주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의 은총을 기억할 때에 우리가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주시기 위하여 온갖 저주와 멸시와 천대와 조롱과 고난을 당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을 당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주님이 그토록 원하셨던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은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그 온갖 저주와 멸시와 천대와 조롱과 고난과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을 당하신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 사실을 몰랐으면 몰라도 죄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그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주님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당하셨는지, 그리고 처절한 고통을 통해서 주신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 줄 안다면 우리가 어찌 생명의 역사를 위한 일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은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너무나 끔찍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로마의 병정들이 무지막지하게 휘두르는 채찍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넘어지고 쓰러지면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셔서 십자가에 손과 발에 대못이 박혀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런 육체적 고난 뿐 아니라 주님은 온갖 멸시와 천대와 조롱을 당했습니다. ①로마 병정들은 사정없이 때린 후에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히고, 침을 뱉으며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하면서 조롱하고 멸시했습니다. ②유대종교지도자들은 눈을 가리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뺨을 치며 너를 친 자가 누구인지 알아맞혀 보라면서 조롱했습니다. ③불과 며칠전만 해도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하면서 환호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④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있을 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은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면서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⑤심지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있는 강도들도 네가 그리스도라면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며 모욕했습니다. 이런 참혹하고 끔찍하고 처절한 고통을 통하여 우리 죄가 용서되어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 놀라운 은혜를 입은 우리는 백번 천번 만번 죽어도 감사하고 찬양하고 영광을 돌려야하지 않습니까? 또 그냥 감사하고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면서 그 은혜만을 누리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래서 주님이 그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얼마나 처절한 고통을 당하신 것을 안다면 어찌 그냥 편히 앉아 은혜만 누리고 있을 수가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16:24절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정말 백번 죽고 또 죽어도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도 주님의 그 거룩한 생명의 역사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게 주님의 은혜를 덧입은 자의 마땅한 의무이고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일이고 우리 자신이 더욱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길입니다.

물론 주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마귀사탄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죄와 무지 가운데서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이기주의와 인본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라 생명의 역사를 이루는 일에 참여하려면 이러한 모든 마귀사탄의 역사와 세상의 물결을 거슬러 올러가야 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을 부인하며 육신의 안일함과 평안함과 즐거움만을 향하여 가던 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세상의 돈과 명예와 권세와 세상 즐거움보다는 선과 진리와 의를 따르며 주님의 거룩한 역사를 위하여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과 정열을 받쳐야 합니다. 열심히 모여 깨어 기도하고 말씀 묵상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을 베풀어야 하고 전도도 해야 하고 거룩한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역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생명의 은총을 덧입은 자들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그것이 가장 아름답고 복되고 고귀하고 영화로운 삶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살리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자신도 정말 세상이 주지 못하는 참된 기쁨과 은혜와 가치를 누리며 살다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정말 복되고 아름답고 고귀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고난주일을 맞이하여 또 오늘 성찬식을 행하면서 우리는 주님의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며 주님이 당하신 그 처절한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며 주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려드리시기 바랍니다. 정말 죄를 멀리하고 오직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며 우리 각자에게 주신 십자가를 기쁨으로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땅위에 생명의 역사를 아름답게 이루어가며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주일낮예배설교:사랑의 십자가(마27:38-44) 하강교회 조학환목사|작성자 학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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