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말씀  : 헌신예배설교( 가난한 여인의 믿음)

 


 


말씀 : 막12:41-44

제목 : 한 가난한 여인의 믿음

1.한 어린 소녀의 감동적인 순교 이야기

저는 오늘 먼저 여러분들에게 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이 이미 목사님을 통해서 혹은 인터넷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알고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메시지에 너무나 어울리는 이야기이기에 말씀드립니다.

이 사건은 1999년 4월20일, 미국 콜로라도주의 리틀턴이라는 한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곳에 콜롬바인 하이스쿨이 있었는데 이 학교에서 마피아단원이며 히틀러 신봉자였던 학생 두명이 반친구들이 자기들을 왕따시킨다고 총기를 난사하여 교사 한명을 포함하여 학생 12명이 죽고 30여명이 부상을 당한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고,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끔찍한 사건 속에서도 너무나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17살난 캐시라는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그 참극이 벌어지던 그 현장에서 범인 한명이 캐시 앞에 총구를 들이대며 물었습니다. “Do you believe in God?” ‘너는 하나님을 믿니?’ 물론 하나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 그 여부를 알고 싶어서 던진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은 같은 건 없으니 믿는다고 말하면 죽이겠다는 위협이었습니다.

그러나 캐시는 침착하게 말합니다. “Yes, I believe in God.” ‘네, 나는 하나님을 믿어요.’ 그러자 범인은 총부리를 더 가까이 들이대며 소리를 쳤습니다. “There’s no God.” ‘하나님은 없단 말이야.’ 한번만 더 그런 소리하면 정말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다시 캐시는 말했습니다. “Yes, There is God. And you must follow His path.”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당신도 그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범인의 총구가 불을 뿜기 시작 했고, 결국 17살 소녀 캐시는 그만 피범벅이 되어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그렇게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어떤 분은 이 이야기를 듣다가 그렇게 용감한 신앙의 고백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녀를 기적적으로 살려주셨는지를 듣고 싶어 했을지 모릅니다. 마치 다니엘의 세친구가 평소보다 칠 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 속에서 머리털 하나 그을리지 않고 살아났던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러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로마의 병정들에게 붙잡히실 때 예수님은 열두 영도 넘는 천군천사들을 불러 그들을 요절 낼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당장이라도 뛰어 내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실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녀린 소녀의 죽음을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소녀는 그렇게 주님 품으로 갔고, 그래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캐시의 한 친구가 이 아비규환의 현장속에서 가까스로 몸을 숨겨 숨을 죽이며 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녀는 가까스로 살아나와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낱낱이 알렸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그 흉악한 범인의 총구앞에서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했는지, 그러자 그 범인이 어떻게 악마처럼 캐시에게 총을 쏘아댔는지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세상속에 알려지자 먼저 미국의 크리스챤 teenage들이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함께 ‘Yes, I believe in God.’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T셔츠를 입고 거리를 누비며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Yes, There is God.’ ‘Yes I believe in God.’ 한 도시에서는 3,000여명의 teenage들이 모여서 ‘Yes I believe in God.’이라는 주제로 집회를 열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집회는 많은 도시들로 번져 나갔고, 결국 잠들어 있던 미국 크리스챤들의 양심을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께 헌신하기 보다는 그저 세상의 풍요로운 물질문명에 젖어 안락을 추구하던 삶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회개하고 헌신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한 어린 소녀의 믿음과 헌신이 잠든 미국 크리스찬들을 깨웠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도 너무나 큰 도전으로 다가오지 않습니까? 괴한이 총구를 겨누고 말합니다. “Do you believe in God?” 너 정말 하나님을 믿니? 그렇다면 내가 너를 죽이려고 하는 이 순간 네가 믿는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 속지마라. 하나님은 없다. 이 지금 차라리 나에게 살려달라고 애원을 해라. 그러면 살려주마. 바로 그런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말합니다. ‘Yes, There is God. Yes, I believe in God.’ 하나님은 계십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당신이 나의 육신을 빼앗아 갈 수는 있어도 내 믿음은 빼앗지 못합니다. 당신이 총으로 위협해도 내 영혼을 강탈해 갈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도 주님이 내게 주신 영광의 나라는 빼앗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진실로 주님의 사람이라면 우리에게도 이런 신앙의 고백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영원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 것이기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만이 진정한 진정한 생명과 기쁨과 위로와 평강이 있기에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도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혹시 누군가 우리를 총으로 위협해도, 혹시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이 와도, 혹시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모든 것을 빼앗긴다해도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런 신앙의 고백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저는 헌신예배를 드리면서 이런 신앙의 고백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예배를 드릴 때에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뜨겁게 역사하셔서 성령의 은총으로 이런 믿음과 능력과 용기로 충만함을 덧입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 여인

오늘 본문에는 바로 그런 신앙의 고백으로 헌신하여 주님을 감동시킨 한 여인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사람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보고 계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에 힘을 주고 보란 듯이 많은 헌금을 하고 들어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초라한 행색으로 부끄러운 듯 적은 헌금을 하고 들어갔습니다.

이때 주님의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드는 한 특별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고관대작의 부인도 아니었고, 유명인사도 아니었고, 절세미인은 더더구나 아니었습니다. 그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한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이 여인은 부끄러운 듯 헌금함 앞에 다가와서는 조심스럽게 두 렙돈의 헌금을 하고는 성전으로 들어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을 보신 주님께서 여인을 불러 세우고 흩어져 있던 제자들에게 불러 모아서 말씀했습니다. 43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여러분, 이 말씀을 잘 보십시오.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것을 보고 흩어져 있던 제자들을 일부러 불러 모아서 여인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모습에 너무나 큰 감동을 받으셨으면 일부러 제자들을 불러모아서 이 여인을 칭찬하셨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오늘 이 가난한 과부가 헌금한 두 렙돈이 지금 돈으로 환산하며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그것은 많아봐야 1,000원도 안되는 돈입니다. 렙돈은 당시 화폐의 최소 단위로 1렙돈은 노동자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데나리온의 1/128입니다. 그러니까 하루 품삯을 50,000원으로 친다면 약400원정도 되겠죠. 그러니까 두렙돈은 약800원정도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천원도 안되는 헌금을 하는 여인을 보면서 너무나 감동을 받아 제자들을 일부러 불러 모아서 칭찬했던 것입니다. 왜 그랬는지 그 해답은 44절에 있습니다. 우리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그 돈이 어떤 돈이라고요? 모든 소유, 생활비 전부. 그것이 이 여인의 전 재산이었다니까요? 그것이 이 여인의 생활비 전부였다니까요. 그런데 그걸 주님께 그렸다니까요.

그러니 주님이 어찌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 순진무구한 믿음의 헌신을 보며 어찌 감동을 받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여인이 얼마를 드렸느냐가 아닙니다. 자신의 것을 몽땅 바쳤다는 그 자체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인 것입니다. 여인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것이 재산의 전부였는데요. 그것이 없으면 내일 굶어야 될지도 모르는데요.

그러나 이 여인은 ‘주님, 비록 너무나 적은 돈이지만 이게 내가 가진 것의 전부입니다. 이걸 다 드리면 내일 어떻게 될지 나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믿습니다.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고 공중 나는 새를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이런 하나님께서 대한 전폭적인 신뢰로 주님께 드린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런 믿음이 없이 어떻게 전재산을, 생활비 전부를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믿음이 없었다면 드리기는커녕 도리어 이렇게 원망 했을지도 모릅니다. 주님, 저는 정말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도 정말 저를 사랑하시나요? 주님 나는 너무 가난합니다. 지금 가진 것이라곤 하루의 생활비밖에 없습니다. 나는 남편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도 나를 업신여깁니다. 그런데 주님, 왜 나를 돌아보시지 않습니까? 내 처지가 너무 딱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저를 정말 사랑하시기는 사랑하시는 건가요? 그렇게 말입니다.

설령 그렇게 원망까지는 안할지라도 이렇게 변명할지도 모릅니다. 주님, 저는 정말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정말 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주님, 주님도 내 형편이 어떤지 잘 아시잖아요. 제게 있는 것이라곤 고작 800원 정도입니다. 이것은 오늘 내 생활비입니다. 그러니 이걸 드리고 나면 저는 굶어야 해요. 그러니 이걸 하나님께 드릴 수는 없잖아요. 다음에 좀 여유가 생기면 드릴께요. 다음에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드릴께요.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가난한 과부 여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다 맡겨버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길을 인도해 주실 것으로 믿고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면 기왕 믿을 바에야 이런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대한 무한한 신뢰와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보호하심,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래서 자신의 삶을 주님께 맡기며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지금 상황이 이래요, 환경이 이래요. 전세돈도 마련해야 하고요, 아이들 교육도 시켜야 하고요, 애들 결혼도 시켜야 하고요, 그래서요. 지금은 좀 곤란해요. 나중에 좀 안정이 되면 그때 할께요. 그때까지만 참아 주세요.

그러면 이건 뭔가 잘 못 믿는 거예요.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신다 그랬잖아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공중나는 새를 보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말씀하셨잖아요? 이런 주님의 말씀을 믿으면 못할 게 뭐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순진한 믿음의 사람들을 찾습니다. 순진한 믿음의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보세요. 열두해를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주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면 나을 거라는 순진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을 터치했을 때 은혜를 받았습니다. 로마의 백부장이 순진한 믿음으로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하는 고백을 했을 때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며 은혜를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는데 순진하게 그대로 했습니다. 다윗은 그렇게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여러번 있었지만 그냥 순진하게 하나님께서 처리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 은혜와 능력과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순진하게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따르는 그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갓난아기처럼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주님이 인도하십니다. 시37:5,6절을 보세요.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그야말로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한 믿음으로 주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의 은총을 풍성하게 맛보며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전적인 신뢰로 헌신한 여인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또한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것은 전적인 신뢰에 전적인 헌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기에 자신의 것을 몽땅 예수님께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뭐, 너무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무엇에 정열을 바칩니까? 무엇에 시간과 물질과 힘과 지식과 재능을 투자합니까? 말할 것도 없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사랑하고 가장 기쁨과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곳에 투자합니다. 그런 믿음이 있는 곳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과연 우리를 정말 행복하게 하고 가치있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과연 우리에게 진정한 생명의 은총과 자유와 평화를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완전히 신뢰하고 따라 갈 수 있는 분이 누구십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가장 귀한 분에게 어찌 가장 좋은 것들을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가장 귀한 일에 어찌 우리의 정열을 투자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바보가 이 귀한 일에 정열을 바치지 않고 별로 귀하지도 가치도 없는 일에 인생을 바치겠습니까? 어찌 이 좋은 일에 몸과 마음과 시간이 가지 않겠습니까?

어떤 작은 시골에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주일날 웬일인지 이분이 교회를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다 마치고 목사님이 심방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 글쎄, 이 분이 오이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목사님이 안타까워서 ‘집사님, 어떻게 된 겁니까? 주일날 이렇게 오이밭에서 일을 하고 계시다니요?’ 그러니까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너무 바빠서요. 오늘은 교회에 가면 몸은 예배당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이 오이밭에 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러려면 차라리 몸은 오이밭에 있고 마음은 예배당에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여러분은 어떤 게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비록 몸은 밭에 있어도 마음은 교회에 있는 게 낫습니까? 아니면 몸은 교회에 있고 마음은 밭에 있는 것이 낫습니까? 낫기는 뭐가 낫습니까? 둘다 틀린 거지요. 마음이 있으면 몸도 가고, 몸이 가면 마음도 같이 가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 제가 지금 바빠서 교회일을 잘 못하는데요 그래도 마음만은 늘 교회에 있답니다. 그렇게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다. 정말 마음이 있으면 몸도 시간도 물질도 정열도 가게 되어 있는 겁니다. 아니 정말 사랑하는데 몸이 안갑니까? 시간이 안갑니까? 물질이 안갑니까? 예수님께서 마6:21절에서 뭐하고 하셨습니까?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바꾸어 말하면 네 마음이 있는 곳에는 네 보물도 있느니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가난한 여인은 하나님께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감사와 가쁨으로 주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생명이요 나의 기쁨이요 내 인생전체를 책임져 주실 분이기에 생활비 전부를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걸 완전힌 믿었기 때문에 주님께 헌신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 뿐 아니라 이 보화를 발견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전 생애를 주님께 드려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은혜를 누리며 살지 않았습니까?

저는 구약성경 중에서 정말 하나님을 갓난아기처럼 신뢰하고 믿고 따른 두사람을 찾는다면 물론 많은 위대한 신앙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노아와 아브라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노아 할아버지를 보십시오. 그는 천하를 다 덮어버릴 비를 내릴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120년이나 그 날을 기다리며 배를 만들었습니다. 이 얼마나 순진한 믿음이며 이 얼마나 놀라운 헌신입니까? 여러분, 그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아니 전세계를 쓸어버릴 홍수를 생각할 수 있습니까? 아니 처음에는 믿었다해도 어떻게 비는 올 생각도 안하는데 120년동안이나 그 말씀을 믿고 배를 지어요? 1년, 2년, 10년, 20년, 50년, 100년을 지나면서 얼마나 많은 시험이 있었겠으며, 얼마나 조롱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노아는 끝까지 갓난아기와 같은 순진한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헌신했습니다. 누가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비웃고 조롱하거나 말거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그냥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거기에 걸었습니다. 자신의 시간과 정열과 물질과 청춘을 거기에 다 바쳤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멸망당하는데 그 가족만 구원받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입니까? 아니, 다 죽고 노아의 여덟식구만 살았다니까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헌신이 그를 살리고 가족을 살리고 결국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이루게 했던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은 어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지시를 내리십니다. 인간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명령 아닙니까?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티끌같이 많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해 놓고 25년이나 지나서 겨우 이삭하나 주시더니 그나마 그 자식을 동물을 잡듯이 잡아서 불에 태워서 번제로 드리라니 어디 말이나 됩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말없이 드립니다. 그건 정말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누가 자녀의 생명을 달라고 할 때 차라리 나를 드리겠다고 말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겠지. 하나님이 나를 해롭게야 하실라고, 하나님께서 내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티끌과 해 주시겠다고 하셨으니 분명 무슨 다른 뜻이 계시겠지 하면서 그냥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오히려 ‘아니 재가 정말 제 자식을 번제로 드리려는 거야.’ 하면서 깜짝 놀라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그의 믿음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삭도 살고 자손이 하늘의 별과같이 번성하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또 사도바울은 어땠습니까?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뒤 자신의 모든 것을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자신의 전생애를 완전히 바쳤습니다. 왜요?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했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는 보화에 비하면 세상의 것들은 배설물과 같이 여겨졌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일말의 미련도 없이 자신의 전생애를 드린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순진한 믿음을 가져야하고, 순진한 믿음을 가졌으면 당연히 순종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분이라면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영원한 생명의 은총이 천하보다 소중한 것이라면 생명이라도 내 놓으라면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때 분명히 주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과 은혜가 충만한 삶이 있을 것입니다.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제 간증을 잠깐 해도 되겠습니까? 저의 고향은 경기도 안성입니다. 그러나 군에서 전역하고 곧바로 포스코에 입사하여 1979년에 이곳에 내려왔으니까 벌써 경상도 사람된 지가 32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렇게 포스코에서 12년을 근무하다가 그만 두고 목사가 되었는데요, 저는 결혼을 하고 아내를 따라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심심하면 한번 나가는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지났을 때 저에게 큰 시련이 왔습니다. 저 자신에게도 시련이 있었지만 더 큰 시련은 아들을 통해서 왔습니다. 큰 아들이 5살 때 큰 질병에 걸려 포항성모병원에서 한 달여 동안 치료를 했지만 도무지 차도가 없어 결국 서울대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만 살려 주십시오, 하나님, 이 아이만 고쳐주십시오. 그러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제 목숨을 내 놓으라면 내 놓겠습니다. 제게 주신 모든 것 송두리째 바치라면 바치겠습니다. 아골골짜기 아니라 그보다 더한 곳도 가겠습니다.’하면서 새벽마다 울며불며 기도했습니다. 한 밤중에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회사에서 퇴근해서 오는 길에 교회에 가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고, 아이는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제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무엇이라도 시키는대로 하겠습니다.」하면서 눈물 흘려 기도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저에게 간절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뜨거운 마음을 주셨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던 주님의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내 남은 생애를 다 주님께 드리기로 하고 저는 사표를 내기로 결단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약하고 간사하고 부족한 게 인간이더라고요. 그렇게 기도하고 결단을 하였지만 저는 몇 달 동안 갈등을 겪었습니다. 막상 사표를 내려고 하니까 정말 막막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내의 반대도 심했고, 솔직히 저도 가장으로서 걱정과 염려가 몰려 왔습니다. 저는 솔직히 유산이라고는 땅 한평, 단 돈 몇 십만원도 받지 못했습니다. 신혼생활을 월급타서 모은 돈 50만원으로 연탄 온돌 단칸방 전세부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자다가 한번은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을 뻔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경제적으로도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일 큰 걱정은 아이들 교육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새벽마다, 밤마다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주님, 주님을 위하여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더욱 온전한 믿음과 용기를 주십시오. 우리로 하여금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이 맡겨주신 일을 감당케 해주십시오. 그때 주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그리하여 결국 1992년, 우리 큰 아이가 초등학교3학년 때 사표를 내고 몇 년간의 신학수업을 거쳐 목사가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정말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정말 갓난아기처럼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맡아주십니다. 저는 그것을 진실로 경험했습니다. 주님의 인도를 따라 이 길을 왔을 때 주님께서는 제가 했던 염려와 걱정들을 말끔히 씻어주셨습니다.

가장 큰 염려였던 아이들 교육문제도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셨습니다. 저는 늦게 목회를 시작하여 신학공부도 많이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시골목회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열명도 안되는 깡촌 교회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한 학년에 대여섯명 밖에 안되는 깡촌학교에 다녔습니다. 물론 과외는 꿈도 못 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돈 별로 안들이고 교육을 모두 마쳤습니다. 큰 아들은 여기서 가까운 일류대학에서 무료로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지금은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모회사 연구원으로 있습니다. 얘는 초등학교때부터 석사과정까지 등록금은 한 푼도 안내고 공부를 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고등학교때까지는 등록금 안내고 다녔고 지방 국립대학을 다녀 그렇게 많은 돈 안들이고 작년에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하여 성실하게 잘살고 있습니다. 큰 녀석은 지난 7월에 결혼도 하여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자랑하려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맡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 후회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둘만 낳을 게 아니라 야곱처럼 한 열두명은 낳는 건데 하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경주시민 교회 성도여려분, 특별히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1,2여전도회원 여러분,

주님을 믿으십니까? 네, 믿으시는 줄 믿습니다. 기왕 믿으실바에야 확실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탁 맡겨버리고 그저 말씀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으로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부분들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진정 용기있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과 교회 위에 놀라운 생명의 역사,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과 우리 경주시민교회위에 이런 놀라운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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