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기독교의 황금율

 

 


제목 : 기독교의 황금율

말씀 : 마7:12

1.기독교의 황금율

오늘 말씀은 기독교의 황금율이라고 일컬어지는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말씀을 황금율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3세기의 로마 황제 알렉산더 세베루스라는 사람이 이 말씀에 감동을 받고 황금판에 새겨 서재에 걸어 놓고 늘 음미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사람은 예수님을 잘 믿어서 이 말씀을 황금판에 새겨 서재에 걸어 놓고 이 말씀을 묵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교도 곧 우상숭배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 말씀을 너무나 귀하게 여겨 황금판에 새겨서 걸어놓고 늘 묵상하며 대중 앞에서 연설할 때나 재판을 할 때 이 말씀을 종종 인용하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상숭배자가 이 말씀을 황금율로 여겼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해야 할까요? 안 그렇습니까? 물론 주님의 말씀이 다 황금보다 귀한 말씀이지만 이 말씀도 얼마나 지당하고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이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아끼고 존중하며 서로 귀하게 대접하며 살아간다면 우리 모두의 삶이 얼마나 서로 귀하고 복되고 아름다운 삶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 말씀이 곧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이 말씀이 선지자가 말씀하고 율법에 기록된 말씀의 근간이요, 핵심이라는 말씀이지요. 이것도 당연하지요.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아래로 사람들 간에 서로 사랑하며 귀하게 대접하면서 그래서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까 이게 말씀이 곧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22:37-40절에서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여러분, 이 말씀도 사실 같은 말씀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나 대접하는 것이나 같은 말씀이죠, 사랑하면 대접하고, 진실로 대접하면 사랑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이 말씀도 서로 대접하라는 말씀과 같이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물론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은 물론 이웃을 대접하는 것, 이것이 곧 율법이요,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두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안다며 위로 하나님은 물론 이웃을 사랑해야 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귀히 여기고 존중하고 섬기고 대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그래야 합니까?

2.우리 모두가 생명의 은총을 누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남을 사랑하고 대접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우리가 함께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전에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무조건 이유없이 해야 되지요. 안 그래요? 우주만물의 주권자시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명령인데 이유고 뭐고 따질 일이 뭐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아니라면 아닌 줄 알고 무조건 순종해야지요.

그러나 물론 주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셨을 때 왜 이유가 없겠습니까? 물론 많은 이유를 말할 수 있겠지만 우선은 서로 사랑하고 대접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 모두가 함께 생명의 기쁨과 사랑과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는 복된 삶이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여러분, 이 말씀 제일 앞에 보면 ‘그러므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즉 앞에서 무슨 내용을 이야기하고 그런 이유로 어떻게어떻게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는 학생이다. 그러므로 공부해야한다. 나는 성도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와 같이 앞에 있는 내용이 이유가 되어 뒤에 있는 행동을 꼭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그러므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으니까 남을 대접해야 할 이유가 그 앞에 나와 있는 거예요. 그게 뭡니까? 앞의 말씀 1~11절 전체 말씀인데 특별히 2절과 11절에 잘 나타나 있는데 먼저 2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즉 네가 남을 비판하면 너도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니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네가 남을 대접하지 않으면 남도 너를 대접하지 않을 것이니 네가 대접을 받고 싶다면 네가 먼저 남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대접이란 먹을 것을 사주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며 인격적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도 사랑받고 존중받고 귀히 여김받고 인격적인 대접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내가 남을 무시하는데 상대방이 나를 존중하겠습니까? 내가 욕하는데 상대방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겠습니까? 내가 상대방을 미워하는데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겠습니까? 내가 남을 비방하고 깎아 내리는데 누가 나를 높여 주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높여주면 그 사람도 나를 그렇게 대해주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함께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누리려면 서로 대접하되 내가 먼저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11절에 보면 우리가 서로 대접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같이 보겠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으로 줄줄 안다면 선한 나는 너희에게 얼마나 좋은 것을 주겠느냐? 그리고 실제로 나는 너희를 사랑하고 귀히 여겨서 너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었다. 너희가 먹고 입고 잠자며 활동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거저 주었고, 나아가 독생자까지 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귀하게 대접해 준 것처럼 너희도 서로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너무나 귀한 대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너무나 많은 것을 거저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비롯해서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삶의 터전을 삶고 있는 땅, 세상에 빛을 주고 따뜻하게 하여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태양, 물, 공기, 각종 동물이며 식물들, 지혜와 능력과 이성, 게다가 하나님의 아들로 대접해주셔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까지 주셨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뭐 잘나고 똑똑하고 선하고 의롭고 거룩해서가 아니라 그냥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아들 대접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아무 공로없이 귀한 대접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는 이웃을 귀하게 여기고 높여주고 대접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올바른 인간이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한편으로는 서로 대접하는 것이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누리는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그리고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과분한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정말 사랑하고 아끼고 귀히 여기며 서로 대접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서로가 서로에게 생명의 기쁨을 주며 주님의 영광 나타내는 복되고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누구를 어떻게 대접해야 합니까?

3.하나님을 최선을 다해 대접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 대접해야 하는데 그 전에 먼저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려야 합니다. 앞에서 보았던 마22:37,38절 말씀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여러분, 보십시오. 첫째 계명이 뭡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도 그냥 대충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께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이고 의무이며, 진정 영원하고 완전한 능력과 사랑과 지혜의 하나님, 완전한 선과 진리와 의이신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예우이며 바르게 대접해 드리는 일인 것입니다.

너무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생명을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사랑과 은혜와 자비와 거룩과 의로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주만물의 주권자이십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우주만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분이십니다. 반면에 우리는 어떻습니까? 인간적으로 제법 똑똑하고 위대하고 선한 모습이 있을지라도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면 정말 한없이 작은 자입니다. 정말 무지하고 어리석고 미련하고 한계속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인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셔서 영원한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 앞에 겸손히 엎드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 높고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놀라운 사랑을 받은 우리가 어찌 몸과 마음과 정성과 심지어 목숨을 바쳐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엎드려 기도하며,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우리에게 주신 생명과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주님께 드리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정말 그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며 경배와 찬양을 드리며 우리의 모든 것을 동원해서 섬겨야 합니다. 이게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당연한 태도요, 이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르게 대접해 드리는 일인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하나님을 바르게 만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릴 때 우리 인생은 비로소 올바른 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온전하고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마음껏 누리며 동시에 사람을 귀히 여기며 서로 대접하며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세주이시며, 생명의 주관자이시며,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 경배와 찬양을 드리고 마땅히 드릴 것을 드리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올바르게 대접해 드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자기 생각 능력 지혜 경험대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완전한 주권자이시며 능력자이시며 생명과 진리와 지혜가 되시는 하나님을 따라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은혜의 길로 잘 달려가며 주님 안에 있는 은혜의 풍성함을 충만히 누리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4.이웃을 사랑하며 대접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르게 대접해 드리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께서 너무나 사랑하시는 사람을 바르게 귀하게 대접해야 합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그저 열심히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교회만 열심히 섬기는 것만이 거룩한 삶이 아닙니다. 물론 당연히 그러한 삶은 거룩한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일이지만 그렇게 예배드리고 말씀듣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알면 당연히 받은 은혜를 삶속에 적용시켜야 합니다. 위로 하나님을 섬길 뿐 아니라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며 의롭고 깨끗하고 선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위로 하나님을 대접해 드리고 아래로 사람을 대접해주어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경건이요, 거룩한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드린 마22:39,40절에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보십시오. 첫째는 하나님 사랑이요 두 번째는 이웃사랑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 말씀은 레19:18절을 인용하신 말씀인데 거기에 보면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을 있는 레19장의 말씀은 한마디로 성도의 거룩한 삶에 관한 말씀입니다. 즉 레19:2절에서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즉 나는 거룩한 하나님이고, 너희는 나의 자녀다. 그러므로 너희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다음에 그러면 거룩한 삶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신데 거기에 보면 ‘네 부모를 경외하라. 안식일을 지키라. 헛것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께 올바른 제사를 드리라. 곡물을 거둘 때에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속이지 말라.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 이웃을 압제하지 말라.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두지 말라. 불의를 행하지 말라.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등등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위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고,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거짓과 도적질과 불의를 버리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곧 거룩한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며 깨끗하게 진실하게 의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마땅한 태도이고 서로가 생명의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서로 사랑하고 귀하게 대접하며 살아야 하는데 특별히 여러분, 먼저 가족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며 서로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가족은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하고 가장 귀한 이웃이 아닙니까? 그러면 먼 이웃도 사랑하고 귀히 여겨야 한다면 가족은 얼마나 더 아끼고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대접하고 존중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물론 이웃도 사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가족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 가족을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존중하고 대접함으로 서로에게 정말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가족 못지않게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대접해야 할 이웃이 있습니다. 그게 누구겠습니까? 물론 성도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성도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면 성도는 형제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똑같은 아버지를 섬기면 형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엡2:19절에서는 하나님의 권속 즉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권속이요, 형제이면 얼마나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존중하고 대접해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아끼고 존중하며 살아간다면 교회에서 얼마나 주님의 향기가 나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겠으며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겠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또 얼마나 아름답게 이루어져가겠습니까?

그런데 근간에 보면 성도 간에 서로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높여주고 하지 못하고 도리어 시기하고 질투하고 심지어 싸우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미워하시는 일이므로 우리는 절대로 그러면 안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주변의 모든 이웃도 사랑해야 합니다. 귀하게 여기고 대접해 주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사는 길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빛을 비추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힘있게 이루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저와 여러분은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말씀 묵상하며 섬기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르게 대접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존중하며 귀하게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족을 정말 서로 귀히 여기고 아끼고 사랑하며 귀하게 대접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또한 믿음안에서 한 형제자매된 성도들간에 정말 서로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아끼고 존중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생명의 역사를 힘있게 이루어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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