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 부활절주일예배설교

 

 

 

말씀 : 고전15:1-8

제목 : 부활의 증거들

 

1.예수님은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죽음이라는 인류의 마지막 원수, 가장 큰 원수를 물리치시고 살아나셔서 예수님이 생명의 주라는 사실을 명백히 드러내신 날입니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승리를 안겨 주신 날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둘도 없는 역사적인 날을 맞이하여 부활의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심으로 부활의 생명과 기쁨과 은혜와 능력이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기독교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죄사함의 은총과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주어진 영원한 새생명의 은총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지식이나 과학이나 철학이나 도덕도 흉낼 낼 수도 없고, 흉내 내지도 못한 놀랍고 신비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의 모든 법칙과 질서와 이성과 과학과 경험과 상식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예수님의 부활을 잘 믿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의 이성과 과학과 경험과 상식으로는 불가능하고 이해하지 못할 일이 많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불가능하고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만해도 그렇습니다. 이성적, 논리적, 과학적으로는 절대적으로 이 세상이 존재 할 수 없습니다. 과학적 법칙에 의하면 세상에는 그 어떤 것도 저절로 생겨나거나 사라질 수도 없습니다. 물질도 생명도 질서도 절대로 저절로 생겨 날 수 없습니다. 저절로 생겨날 수 없다면 당연히 과학적인 방법으로는 나도 세상도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과학적으로는 절대로 저절로 생길 수 없는데 과학적인 방법으로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느냐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그냥 저절로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지요. 세상의 어떤 것도 저절로 생길 수 없는데 어떻게 처음부터 저절로 있을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 대답은 하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세상의 모든 과학과 논리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아니 모든 이성이나 지혜나 과학이나 질서나 그 모든 것들도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모든 과학과 지성과 이성과 경험 위에 계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상식과 이성과 경험과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깨트려 버리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행2:2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은 결단코 사망권세아래 억눌려 있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상식과 경험과 과학의 법칙을 깨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모든 죄와 무지와 어둠과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생명의 주님이심을, 그 안에 영원한 승리가 있음을 만천하에 알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께서 모든 어둠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이 날을 맞이하여 더욱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안에 부활의 주님을 온전히 모셔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부활의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인생의 발걸음을 옮겨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활의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서 모든 죄와 어둠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모든 상황과 환경과 약한 것들을 이기고 부활의 생명과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주님의 부활은 명백한 증거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긴가민가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아직도 이성과 경험안에 갇혀 예수님의 부활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생명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부활의 주님을 만나 부활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1)성경과 예수님이 증거입니다.

 

부활이 너무나 확실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3,4절을 보겠습니다.“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여기서 성경은 구약성경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이 고난 당하실 것과 다시 살아나실 것은 미리 말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53:5절에서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시16:10절에서는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여기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눅9:22절을 보십시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즉 구약성경에서 이미 예고하였고, 주님은 여러 차례 말씀하신대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기서 생각해 봅시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성경이 뭐가 되겠습니까? 또 예수님은 뭐가 되겠습니까? 성경은 허무맹랑하고 휘황하고 과대망상에 빠져 있는 정신 이상자가 기록한 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희대의 거짓말장이요, 과대망상자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그만큼 강조해서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성경의 증언과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거짓된 소리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성인이라고 합니까? 예수님이 나는 죽을 거다. 살아날 거다 말씀하셨는데 성인으로 믿는다면 따라야 할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과대망상주의자, 정신이상자로 몰아가야 정상 아닙니까? 또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말이라고 한다면 그 허무맹랑하고 거짓말투성이인 성경이 어떻게 200여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수십억권이 팔린 세계 최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나 성경에 대하여 두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으로 따르든지 아니면 과대망상주의에 빠져있는 허무맹랑하고 거짓말투성이인 쓰레기 같은 것으로 여기든지........

지난 주일에 전도를 하다보니까 윗마을 버스 정류장 밑에 집 할아버지가 자기네 가문에서 사회로 진출했으면 판검사는 넉넉히 하고도 남을 제일 똑똑한 두 놈들이 하필이면 목사가 되었다고 한탄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속으로 그랬습니다. ‘할아버지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십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다시 오신다. 예수님 믿어야 죄용서받고 천국간다. 당신네들은 그걸 미친소리라고 하는데 그 똑똑한 두 놈이 바보 멍청이 천치라서 그걸 믿고 그걸 전하는 사람이 되었겠습니까?

여러분, 주님은 구약에서 예언되었고 주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처럼 분명히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분명히 사망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고,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진정 유일한 부활의 주님이시오, 생명의 주님이시오, 심판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모셔들이고 주님과 동행할 때에 부활의 능력과 기쁨과 은총을 풍성히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빈무덤이 증거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빈무덤이 확실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무덤에 장사지냈을 때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다가 감춰놓고 부활했다는 헛소문을 퍼트릴 것을 우려하여 무덤입구를 큰 돌로 막은 다음에 바위와 무덤 양쪽 벽에 밧줄로 여러 번 동여매고 진흙을 발라 인봉을 했습니다. 그리고 경비병들을 세워 단단히 지키게 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밧줄 아니라 쇠사슬로 백번천번만번을 묶어놔도 소용없고, 진흙 아니라 쇳물을 부어놔도 소용없습니다. 경비병 아니라 경비병 할아버지를 세워놔도 소용없습니다. 여인들이 무덤을 찾았을 때는 무덤문은 이미 활짝 열려 있었고,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생명의 주님임으로 무덤에 갇혀 있을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28:6절에서는 말씀합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세상에 천하없는 사람이라해도 다 무덤에 갇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망권세 앞에 그 어떤 조그마한 저항도 한번 하지 못하고 끌려가고 마는 것입니다.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는 80세에 식중독으로 죽어 무덤에 장사 지내져 무덤에서 끝났습니다. 공자는 곡부성의 사수언덕에 안장되어 커다란 무덤을 남겼습니다.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멧은 62세에 죽고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아무도 무덤을 박차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그들의 무덤이 성소가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무덤의 권세에 갇혀 있는 자들에게서는 생명의 은총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자기 스스로 무덤에 갇힌 자가, 사망 권세에 진 자가 어떻게 우리에게 생명을 주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의 주님이셨기 때문에 무덤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무덤에 집착하지 마세요. 무덤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연속극에 보면 무덤 앞에 가서 막 이야기를 하고 그러는데 그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부질없는 짓입니다. 거기 뭐가 있습니까? 생기가 있습니까? 평안이 있습니까? 기쁨이 있습니까? 있다면 썩어 냄새나는 시체 뿐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직 무덤의 권세,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승천하신 예수님께만 생명과 희망과 기쁨과 소망이 있습니다. 세상에 천하없는 것이라해도 다 무덤 권세아래 있기 때문에 거기서는 진정한 생명과 소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이 부활의 주님을 심령속에 모시고 살아가면 부활의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어둠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무덤과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그래서 영원한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주님과 동행할 때에 부활의 은총을 더욱 충만히 누리는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수많은 부활의 증인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세상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나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람들앞에 나타난 것이 성경에 기록된 것만해도 16번이나 됩니다.

오늘 본문 5-8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막달라 마리아에게, 베드로에게, 열두 제자에게 보이시고 심어는 500여명이 모여 있는 곳에도 주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만져보고 확인하였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그러다가 500여명의 문도들이 보는데서 승천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은 분명한 증거가 있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주님을 눈으로 보았고, 손으로 만져 보았고, 귀로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활의 산증인이 되어 생명을 바쳐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이 분명한 사실을 기억하시고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온전히 모셔 들이고 주님과 동행할 때에 부활의 기쁨이 충만한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제자들의 삶이 증거합니다.

 

여러분,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만 해도 두려움과 낙심에 빠져 하나같이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몇 일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 분안에 있는 생명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들은 생명을 바쳐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생명의 주가 되셨다고 증거하다가 하나같이 다 순교하였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떤 바보가 거짓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겠습니까? 요새 말로 총 맞았습니까? 안 그래요? 혹시 돈이나 한보따리 안겨 주든지 무슨 큰 권세나 하나 준다면 몰라도 돈이나 명예는커녕 환난과 핍박과 죽음만이 돌아올 그 일을 위해서 왜 거짓말을 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래서 잠시 잠깐 있는 육신의 생명보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더 소중함을 너무나 분명하게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순교를 당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의 부활은 너무나 확실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부인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춘다고 감춰질 일이 아닙니다. 내가 믿지 못한다고 없는 일이 되는 게 아닙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이 안되는 게 아닙니다. 도리어 그렇게 생각하는 그 사람에 화가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알량한 이성과 지식과 경험속에 갇혀 거짓말이다, 환상이다, 신화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과연 정말 부활할 수 있을까하면 의심하거나 잘 믿지를 못합니다. 어떻게 죽어서 냄새가 나는 나사로가 걸어나올 수가 있지? 어떻게 물위를 걸을 수가 있지? 어떻게 물이 갈라져 벽처럼 설 수가 있지? 여러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지식과 이성과 경험의 한계일 따름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죄와 무지와 어둠 가운데 있는지를 보여줄 따름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믿거나 말거나 주님의 부활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둠과 약한 것들과 절망과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그 모든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 안에 있는 자들은 누구나 그 승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죽음의 권세, 죄의 권세, 지옥의 권세, 마귀의 권세, 모든 어둠의 권세를 다 이기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11:25,26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믿음의 촉구하고 있습니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우리 모든 성도여러분은 내 작은 이성과 지식과 경험의 틀을 깨트려버리고 부활의 주님을 심령속에 온전히 모셔들이고 주님과 동행할 때에 부활의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약한 것들, 부족한 것들, 어려운 것들, 죄된 것들 다 이기시고 영원한 승리자로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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