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성령의 능력

 

 

 

 

제목 : 성령의 능력

말씀 : 창3:1-7

1.죄의 유혹은 언제나 달콤합니다.

여러분, 식충식물 아세요? 곤충 잡아먹는 식물 말입니다. 식충식물들은 잎이나 꽃으로 곤충을 잡아먹는데 이들은 먼저 아름다운 향기를 발산하여 곤충을 유인합니다. 곤충이 이 향기를 맡고 꽃으로 접근하여 앉으면 미끄럽고 깊은 웅덩이 같은 게 있습니다. 그 웅덩이 속에는 곤충을 녹여버리는 강력한 소화액이 있습니다. 그러나 곤충은 그것도 모르고 향기에 취해 웅덩이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어느 정도 들어가면 꽃잎이 닫혀 버리고 곤충은 그 안에서 녹아버려 식물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마귀가 인간을 사냥할 때 쓰는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뭔가 향기로운 냄새를 보냅니다. 아름답고 편하고 즐겁고 향기롭고 기쁘게 느껴지도록 만듭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뭔가 맛있는 게 있을 것 같습니다. 뭔가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호기심이 발동되어 자꾸 가까이 가게 됩니다. 가까이 더 가까이 가다가 그만 풍덩 빠져 들어가서 허우적거리다가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귀의 수작에 당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의 달콤한 유혹에 속습니다. 성과 향락과 쾌락의 달콤한 유혹에 속아 넘어갑니다. 술과 담배와 마약과 놀음의 유혹에 속습니다. 세상 즐거움과 안일함과 편안함의 달콤함 유혹에 속습니다. 그런 달콤한 유혹의 웅덩이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주일날 일하면 그 만큼 더 많은 돈을 벌어 더 행복할거라는 유혹의 덫에 걸려 주일날 교회도 못나오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십일조 생활 안하면 더 부자가 되어 더 행복할 줄아는 유혹의 덫에 걸려 십일조 생활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니나노 먹고 마시자 하면 무슨 기쁨이나 행복이 있는 알고 거기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뭔가 한 방에 될 것 같은 달콤한 유혹에 빠져 노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가 하면, 뭔가 황홀하고 쾌감이 느껴지는 기분의 유혹에 빠져 마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을 그저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하면 행복할 줄 아는 유혹의 덫에 걸려 남을 위해서도 사용하지 못하고, 하나님께도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속지 마세요. 거기는 혹시 죄된 육신과 생각으로 맛있고 재밌고 넉넉한 삶이 있을지 모르지만 절대로 진정한 생명의 기쁨이 없습니다. 진정한 평안과 행복과 안식과 자유가 없습니다. 참된 보람과 가치와 의미와 존귀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거기는 고통과 상처와 죽음뿐이요,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뿐입니다.

오늘 말씀 5,6절(상) 보세요.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얼마나 그럴 듯 합니까? 먹어도 괜찮다. 죽지 않는다. 죽기는커녕 좋아진다. 하나님처럼 된다. 그러니까 먹어라. 그래서 나무의 실과를 보니까 정말 그랬습니다. 정말 보기에 탐스러웠습니다. 먹음직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덜커덕 따먹고 말았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행복하고 지혜롭고 평안과 기쁨과 가치와 의미와 보람이 넘치는 삶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도리어 생명과 기쁨과 축복의 동산 에덴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종신토록 수고해야 했습니다. 인간을 괴롭히는 것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고통과 아픔과 상처와 질병과 수고속에 살다가 마침내 죽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유혹에 속으면 안됩니다. 사기꾼에게 넘어가면 안됩니다. 가짜에 속으면 안됩니다. 여러분, 먹이에도 진짜가 있고, 가까가 있습니다. 진짜는 양식이 있고, 가짜는 미끼입니다. 양식은 먹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되지만 미끼는 똑같이 먹는 것이지만 먹으면 죽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마귀가 던져놓은 아주 맛있게 생긴 미끼가 너무 많습니다. 돈의 미끼, 권력의 미끼, 향락의 미끼, 명예의 미끼, 편안함의 미끼, 자기 중심의 미끼, 지식의 미끼 등 수많은 미끼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언가 우리 앞에 그럴듯한 것이 있으면 이것이 양식인지 미끼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말 살이 되고 피가 되고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를 병들게 하고 고통받게 하고 마침내 죽게 하는 것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인지 우리를 죽게 만드는 미끼인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게 유혹인지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주님의 음성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어서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아무리 달콤하고 그럴듯하고 보기 좋아도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이 아니면 단호히 거부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양식만을 받아먹어야 합니다. 달콤한 마귀의 소리를 따라가면 안됩니다.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따라 가야 합니다. 그런 인생에게 진정한 생명과 기쁨과 보람과 의미와 가치와 존귀함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꼭 이런 귀하고 복되고 아름답고 귀하고 진정한 생명의 기쁨이 넘치는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교묘하게 다가오는 모든 유혹과 미끼를 바르게 분별하고 물리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유혹의 장소를 멀리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유혹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먼저 마귀가 주는 미끼가 널려 있는 곳을 피해야 합니다. 제아무리 지뢰 전문가라도 지뢰가 널려 있는 지뢰밭으로 들어갔다가는 까딱하면 죽습니다. 세상에는 마귀가 묻어놓은 지뢰가 천지에 널려 있습니다. 온갖 종류의 미끼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멋도 모르고 다니다가는 어느 순간에 낚시 바늘에 코를 꿸지 모릅니다. 어느 순간에 유혹의 마수에 걸려들지 모릅니다. 어느 순간에 지뢰가 터질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마수에 걸려들지 않도록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럴 가능성이 농후한 장소와 시간 속에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유혹을 당합니까? 눈으로 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래서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으로 봄으로써 욕망이 발동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언제 보게 됩니까? 죄의 장소에 가면 보게 됩니다. 그리고 가서 보게 되면 우리 속에 들어 있는 죄의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자꾸 보고 듣게 되면 그게 점점 힘을 얻습니다. 여러분, 죄는 이미 우리 마음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양식을 공급하지 않으면 죄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죄의 양식을 공급하면 죄가 성장하고, 생명 양식을 공급하면 생명이 성장합니다. 그러므로 죄의 양식을 공급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죄의 양식이 뭡니까? 왜곡되고 악하고 죄된 것들을 가까이 하며 그런 것들을 보고 듣고 배우는 것입니다. 폭력, 절도, 강도, 간음, 향락, 도박, 술, 담배, 마약, 거짓, 미움, 증오, 원망, 불평 이런 것들을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게 죄의 양식입니다. 이런 것들을 가까이하여 그런 것들을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죄의 양식을 공급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죄의 욕망들이 점점 자라나 마침내 활활 타오르고, 그래서 결국 자신을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와가 어떻게 유혹에 빠졌습니까? 그것은 그녀가 선악과나무 근처에 간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선악과 열매는 먹지 말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 하였으면 그 근처에도 가지 말고 쳐다보지도 말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와는 그 나무 근처에 갔고, 게다가 마귀와 다정하게 대화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안 넘어가고 배기겠습니까?

6절 상반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그러니까 하와는 마귀가 유혹할 때 벌써 그 나무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선악과 나무 아래 있으니까 마귀가 작전을 개시한 것입니다. 정말 저 열매를 먹으면 죽느냐고 했느냐? 그러자 하와는 친절하게 답변해 줍니다. 먹는 것은 물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먹으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러자 뱀이 무슨 말이냐, 죽지 않는다. 죽기는커녕 눈이 밝아지고 지혜롭게 되어 하나님 같이 된다. 그러니까 마음놓고 먹어라. 그럽니다. 이 말에 솔깃해진 하와가 나무를 보자 정말 먹음직스럽고 지혜롭게 할 만큼 너무나 탐스러운 열매여서 그만 덜커덕 따먹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 나무아래 간 것도 잘못이고 게다가 마귀의 유혹에 친절하게 대답한 것도 잘못입니다. 아니 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 그 위험한 장소에 가기는 왜가며, 게다가 그런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마귀의 말장난에 장단을 맞추며 대화를 나누는 것은 또 뭡니까?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입니까?

여러분, 다윗도 보세요.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이는 일생일대의 가장 큰 오점을 남겼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삼하11:2절을 보겠습니다.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여러분, 이 때는 이스라엘이 암몬과 전쟁 중이어서 온 군대가 전쟁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여 여유가 있었던 다윗은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편히 쉬며 낮잠을 즐기다가 한가롭게 지붕 위에서 바람을 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만 보지말아야 할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저만치 하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는데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왕의 권한으로 그를 데리고 오라 하여 해서는 안될 짓을 저지르고 말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다윗은 있지 말아야 곳에 있다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되었고, 결국 크나큰 죄를 짓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긴 그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남들이 다 볼 수 있는 곳에서 목욕을 합니까? 일부터 유혹이라도 하려고 했단 말입니까? 하긴 세상에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거나 말거나 다윗은 그곳에 있지 말아야 했습니다. 설령 눈에 보여도 보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런 비슷한 게 보이면 빨리 집안으로 도망 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는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었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계속 바라보다가 결국 큰 화를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있어야 할 곳에 있고,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근처에 가지도 말고 쳐다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눈에 띄어도 빨리 도망가야 합니다. 공연히 근처에 얼씬 거리다가 못 볼 꼴 보고 영혼을 도둑질당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잠23:31에서는 말씀합니다.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포도주는 아름답습니다. 달콤합니다. 기분을 알딸딸하게 만듭니다. 찰랑찰랑대면서 사람을 유혹합니다. 더구나 오색불이 휘황찬란하게 번쩍번쩍 거리며 빛나는 불빛 아래서 보면 더욱 아름답게 반짝이며 유혹합니다. 그러면 침이 꼴꺽 넘어가고 그러면 결국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곳에 가까지 가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금하시고 싫어하시는 곳에는 근처에도 얼씬 거리지 마십시오. 더럽고 추하고 냄새나고 싸우고 죽이고 하는 그런 장소나 시간에는 근처에도 기웃거리지 마세요.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마세요. 향락과 오락과 도박과 음주가무가 있는 그런 곳에는 근처에 가지 마십시오. 가면 자칫하면 그 유혹의 웅덩이에 빠지기 쉽습니다. 맨날 말씀 읽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드려도 유혹에 빠지는 판에 그런 곳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어떻게 유혹에 빠지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여러분,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까? 왜 예수님을 따르지 않습니까? 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너무나 쉽게 유혹에 빠집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문제입니다. 상황이 문제입니다. 죄의 장소 속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와 무지의 장소에서 죄와 무지속에 살아가는 인생들을 보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와 무지속에서 죄와 무지와 교제하고 그런 것들을 들으며 그런 것들을 가까이 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인생인양, 그것이 행복인양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왜 믿음이 식어집니까? 왜 강단에서 선포하는 말씀들이 오래가지 못합니까? 왜 천국과 지옥이 자꾸 의심이 갑니까? 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합니까? 세상에 발을 딛고 세상 보며 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 나라보다는 세상 나라를 몇 배 아니 몇 십배 더 많이 보며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의 소리를 몇 배 아니 몇 십배 더 많이 들으며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하기 보다는 세상의 것을 몇 십배 몇 백배 더 많이 말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더러운 세상, 악한 세상 그러면서 산속으로 들어가 살라는 것입니다. 빨리 천국으로 가라는 뜻도 아닙니다. 세상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그런 것들에 물들고 끌려다니지 않도록 주님을 가까이 하고, 거룩한 장소를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깨끗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1:1,2절에서는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은 절대로 세상의 죄되고 악하고 추하고 거룩하지 못한 유혹의 장소를 가까이 하지도 말고, 그런 곳에서 시간을 허비하지도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터전에서 성실하게 진실하게 열심히 수고하며 거룩한 것, 아름다운 것, 진리의 길, 생명의 길,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예배가 있는 곳, 주님과의 교제가 있는 곳, 성실하게 진실하고 열심히 그런 곳을 가까이 하는 삶을 통하여 주님의 능력으로 세상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유혹의 장소를 피한다해도 그래도 유혹은 다가옵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세상에 몸담고 살고 있는 한 죄된 세상과의 접촉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유혹이 있는 장소를 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 적극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게 뭡니까?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전쟁은 안하고 승리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적이 공격해 올 것에 대한 대비는 해야 합니다. 적이 공격해 오는데 변변한 무기하나 없이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는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무기를 준비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성령인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서만이 세상의 모든 유혹을 분별할 수 있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로마 공화정시대의 안토니우스는 황금의 혀를 가진 웅변가였고 탁월한 정치가였으며, 최고의 장수 중의 한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도 절세미인이었다고 하는 클레오파트라의 유혹에 넘어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클레오파트라는 먼저 안토니우스와 함께 가장 유능한 장수 중의 한 사람이었던 시저를 유혹하여 결혼하여 케사리온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날 시저가 암살 당하게 되고 그러자 어떻게든지 케사리온을 유리한 위치에 세우기 위하여 안토니우스를 유혹하여 결혼을 합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와 전쟁을 하게 되고 이 전투에서 패배한 안토니우스는 자살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클레오파트라도 더 이상 자신이 설 곳이 없어진 것을 깨닫고 이어서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당대 최고의 장수도 클레오파트라의 유혹을 당해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의 이성과 능력과 용기와 의지와 지성 이런 것들 결코 유혹 앞에서 믿을만한 것이 못됩니다. 오직 한가지 우리가 믿을만한 것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오직 성령과 말씀으로 무장하여 말씀의 칼날로 물리쳐 버리는 길 뿐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면 올바른 분별력을 갖게 됩니다. 더럽고 추하고 죄된 장소와 시간속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니 도리어 그런 곳을 혐오하여 멀리하게 됩니다. 유혹과 핍박이 와도 넉넉히 이기게 됩니다.

그래서 엡6:13에서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 즉 진리의 허리 띠, 의의 흉배,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경의 검 이런 것들로 무장하고 있어야 마귀사탄의 흉계와 유혹과 도전을 깨트려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은혜와 능력으로 유혹의 장소를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죄의 양식을 공급해 주는 장소에 서성거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생명과 기쁨과 은혜의 양식을 공급해 주는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예배와 섬김이 있는 곳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 죄되고 추한 곳에는 가지도 말고, 달콤하게 다가오는 모든 유혹들을 바르게 분별하여 물리치고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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