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가정예배 - 행복한 가정

 

 

 

고린도 전서 13장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모든 사람은 다 행복해 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자기의 가정이 행복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이러한 행복한 가정은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고, 꿈이 있는 가정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돈이 있어야 행복할 것이라 생각되기도 하고, 건강하여야 행복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픈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인생살이에서 귀한가 하고 물으면 건강이 제일이라 말하고,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에게 물으면 돈이 제일이라고 말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이런 것은 자기 환경에 따른 주장이지, 일반적으로 공통할 수 있는 영원한 행복은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첫째로 믿음이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먼저 가족간에 서로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다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건강 문제, 죽음 문제, 질병 문제를 초월하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조건을 갖춘 자가 행복한 가정입니다. 의심과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행복해집니다.

둘째로 소망이, 꿈이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희망과 꿈이 없는 사람, 소망이 없는 사람은 도무지 행복해 질 수 없는 조건을 갖춘 사람입니다.

우리가 등산을 할 때 산꼭대기에 올라간 기쁨은 잠시이지만, 그 기쁨보다도 높은 산을 향하여 한발 자국씩 올라가며 힘쓰고, 애쓰며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행복한 때입니다. 이런 행복을 모르고서 직승기(헬리콥터)를 타고 에레베트 산을, 세계 최고봉에 올라 있다 하여도 아무런 감격이 없는 것은 꿈이 없고 노력이 없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올라가는 꿈을 갖고, 노력하는 이 과정이 가치 있는 삶이되기 때문입니다.

꿈과 희망 소망이 없는 가정과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 꿈을 갖고 소망을 키우며 행복을 창조하면서 살아가십시다.

더구나 영생의 소망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해 질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셋째로는 사랑이 있을 때 행복해집니다. 사랑은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에로스의 사랑이 있을 때는 남녀간의 행복이 있고, 필레오 사랑, 스톨케 사랑이 있을 때는 부자간이나 친구 간에 행복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가슴에 않은 엄마의 행복과 정다운 친구와 만났을 때의 행복감을 우리가 경험하듯이 우리는 사랑이 있을 때 행복해집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 사랑을 경험할 때는 완전한 행복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아는 순간은 기쁨이 넘칠 때가 행복한 때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는 항상 기뻐하는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사랑은 부부간에도, 친구간에도 가족간에도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 나 사이에도 사랑이 넘칠 때 온전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반대로 사랑이 없는 미움과 불신이 넘칠 때는 가장 인생의 큰 불행을 갖게 됩니다. 사랑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장3절에는

믿음에는 역사가 따르고, 소망에는 인내가 필요하고, 사랑에는 수고가 있어야 한다 했습니다. 내가 사랑함으로 얻어지는 행복은 반드시 수고가 있어야 얻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안 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당신을 위한 사랑의 수고,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사랑의 수고가, 내 영혼을 위한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만 이 행복을 얻게 됩니다. 나는 오늘 나 자신을 위한 무슨 사랑의 수고를 하였는가를 한번 되새겨 보십시다.

오늘 이 하루를 행복 된 가정을 이루며, 행복한 자신을 만들기 위하여,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위하여, 역사와 수고와 인내를 하여 하나님의 주시는 행복을, 기쁨을 누리는 땅의 복과 하늘의 복을 받는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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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믿음의 위력을 발하라

 

 


찬송 : ‘주 믿는 사람 일어나’ 357장(통 397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가복음 11장 11~25절

말씀 :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평온하게 성 밖으로 나가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그들은 같은 장소를 지나가면서 전날 주님께서 저주하신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놀라서 말합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21절) 예수님께서 무화과 열매를 기대했을 때 그 무화과나무가 주님을 거절하자 예수님께서도 그 나무를 거절함으로써 초래된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일을 통하여 믿음과 기도의 교훈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위력을 발하려면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명령의 권능에 놀랐습니다. 그러자 주께서 생기 있고 적극적인 믿음이 어째서 그들의 기도에 놀라운 권능을 불어 넣는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23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힘과 권능을 통해서라면 어떠한 큰 어려움도 극복될 뿐 아니라 반드시 순조롭게 해결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위력을 발하려면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24절)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을 줄로 믿으라는 기대의 말씀이 아니라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들을 주시는 권세를 지니신 주님께서 ‘너희에게 그대로 될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강도의 굴혈이 되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시킨 것처럼 형식과 죄로 뭉쳐진 산을 깊은 바다에 던질 때 믿음으로 세상이 정복되고 사단의 맹렬한 공격은 마침내 잠잠해질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위력을 발하기 위한 기도의 전제 조건을 덧붙이셨습니다. 승리의 기도에 요구되는 조건은 곧 우리가 아무 대가 없이 용서해주고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25절) 우리는 기도할 때에 다른 사람들, 특히 우리의 적과 우리에게 해를 끼쳤던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용서가 부족하면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데 큰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할 때마다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는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은혜의 보좌에 대해 가지는 하나의 큰 목적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며,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게 하는 것을 가장 큰 목적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기도 :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가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지하여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믿음의 위력을 발하는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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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예배] 하나님의 사명자

 

 

 

찬송 :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441장(통 498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출애굽기 35:30∼36:1

 

성막건축의 명령을 받고 모세는 드디어 성막을 건축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흙으로 벽돌을 만드는 일에는 전문가들이지만 성전 건축에 필요한 정교한 기술들을 배운 일이 없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이 일을 맡기고 싶어도 적임자를 찾지 못할 때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어떤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특별히 지명하여 부르십니다. 브살렐은 수석공인으로, 오홀리압은 브살렐의 협력자로 세웁니다. 모세가 비록 탁월한 인물이고 아론으로 그를 돕도록 붙여주셨지만 성막을 건축하는 일에 하나님은 따로 두 사람을 부르시고 모세의 지도를 받게 합니다. 좋은 지도자는 모든 일을 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 일꾼들을 세우고 격려하고 합심하여 함께 일을 잘 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적재적소에 일꾼들을 배치하고 권한을 위임하는 것은 리더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재능과 은사를 주셨고 그것을 최대한도로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지도자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둘째로 두 사람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충만은 그들을 지혜롭게 하였고 성소를 짓는 모든 일들을 할 줄 알게 하였습니다(36:1). “할 줄 알게 하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외부에서 전문가를 불러오시는 것이 아니고 백성들 가운데 일할 사람을 먼저 뽑고 그들로 하여금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능력보다 부르심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은 능력 있는 자를 불러서 일을 맡기시기보다 부르신 자들에게 능력을 추가해주셔서 그 일을 하도록 만드십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기술과 재능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의 선물 곧 은사입니다.

 

셋째로 오홀리압을 협력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힘 있는 유다지파의 명문가문에서 브살렐을 세우고 타 지파에 비해 비교적 약한 단 지파의 오홀리압을 부지도자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아래 또한 많은 지혜로운 자들을 세워서 다양한 일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교회 일은 이처럼 모든 성도들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일이 부족함이 없고 넉넉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중생으로의 부르심이고 또 하나는 일꾼으로의 부르심입니다. 교회가 일꾼이 없어 할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일꾼을 부르시고 능력과 지혜로 충만케 하심으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인간적 계획과 능력으로 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아 일할 때 지치지 않고 선한 열매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성막을 세우는 일에 부름 받은 가정이요 교회로 서로 협력하는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충성된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 하나님, 하늘로부터 오는 각양 은사로 무장하여 부르심에 합당한 일꾼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수환 목사(서울 람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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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예수님만 바라보라

 

 

 

찬송: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288장(통 204장)

신앙고백: 사도신경

본문: 마태복음 17장 1~8절

말씀: 한국교회가 가진 독특한 것이 있는데 새벽기도와 산기도입니다. 예수님도 새벽기도를 즐겨 하셨고, 산기도도 즐겨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이 산에 올라가서 졸고 있을 때에 예수님은 깨어서 기도하셨고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했습니다. 이 변화된 모습이 원래 주님의 모습이요, 장차 하늘에 오르실 모습입니다. 이 영광스런 모습을 보아야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확신과 용기가 생기겠기에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변화되실 때에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있었는데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유대인들에게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이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나게 되니 졸던 제자들이 두 눈이 번쩍 뜨여졌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베드로가 착각한 것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항상 주연이 있고 조연이 있습니다. 조연은 주연을 빛내주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이 자리에 주연은 예수님이고 조연은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그동안 주연이신 주님과 함께 다녔으면서도 이러한 감동이 없다가 조연을 만나보고 감동을 한 것입니다. 주연을 잘 모셔야 합니다. 어떤 집은 남편에게는 매일 김치찌개나 해주다가 이웃집이 오거나, 남편의 직장 동료가 오면 메뉴가 바뀝니다. ‘아니 평소에 우리 아내가 저런 것을 만들 줄 알았나’ 할 정도로 신기한 것들을 막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주연이 남편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이 그렇고, 오늘 우리의 신앙이 그렇습니다. 가장 귀한 것이 구원을 얻는 일인데 이것은 잊어버리고 살다가 하나님께서 물질의 축복이나 명예의 축복을 주시면 감격하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명예는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여 주신 것에 비하면 조연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였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을 들고 보니 모세와 엘리야는 간곳이 없고 예수님만 계셨습니다. 우리가 깊은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예수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신앙의 깊은 경지를 체험하지 못할 때에 다른 것이 많이 보이게 됩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것을 방해받게 됩니다. 그래서 작은 일로 시험을 받고 작은 일 때문에 신앙생활에 축복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만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크리스천의 위기는 예수님이 희미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무리 험한 세상을 살아가더라도 그 가운데 예수님을 똑똑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예수님 외에는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법을 전하는 곳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면 풍랑이 있고 어둡던 세상이 밝아지고 분쟁이 있는 곳에 찬송이 넘쳐나게 되며, 세상에 끌려가던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라를 보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귀한 선물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정명철 목사(도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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