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여러 가지 시험

 

 

 

야고보서 1장 2절


  
양을 키우는 목자는 염소를 함께 집어넣습니다. 양은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두면 병에 자주 걸립니다. 이런 양들 가운데 염소가 있으면 양들 사이를 헤집고 다닙니다. 이때 양들은 뿔 달린 염소를 피해 도망 다니며 저절로 운동을 해 건강해집니다.

우리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도 자녀들을 강한 믿음으로 키우기 위해 이런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우리에게 시시각각 찾아오는 여러 시험이 바로 우리 삶 가운데 염소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 시험을 이겨내기 위해 애를 쓰다 보면 어느새 우리 믿음이 자라나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욥은 말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 그 고난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믿음을 연단하는 은혜의 손길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 23:10)

사도 야고보도 같은 권면을 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야고보서 1:2)

하나님의 모든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훈련을 위한 시험입니다. 첫째, 이런 시험이 오면 기쁘게 참고 감당해야 합니다. 믿음의 유익을 위한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고난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도움 받을 사람도 만나게 하십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상 주실 것을 기대하며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른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야고보서 1:12)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다른 종류의 시험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사탄의 유혹(야고보 1:13)입니다. 사탄의 유혹은 속지 말고 즉시 물리쳐야 합니다. 이런 유혹이 찾아올 때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악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야고보서 4:7)

성경에는 하나님의 자녀를 타락시키기 위해 사탄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먼저 사탄은 그 사람에게 커다란 금덩이를 보여줬습니다. 그가 눈도 깜빡하지 않자 다음에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냈습니다. 역시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방법으로 그의 질투심을 자극했습니다. “당신의 경쟁자가 방금 자네보다 높은 자리에 올랐다네.” 그는 이 말을 듣고 얼굴을 찌푸리고 화를 내면서 자기 믿음의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성장시켜 결국에는 큰 상을 주시기 위해 인생길에서 여러 가지 염소를 만나게 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 굳센 믿음으로 나아가는 은혜로운 기회로 삼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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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설교 죽음과의 랑데부   왜예수를믿어야하나  

 

 


제 목: 죽음과의 랑데부   왜예수를믿어야하나    
 

(히브리서 9:27~29)

세계 제일차 대전때 어느 시인이 "죽음과의 랑데부(rendezvous:약속된 시간이나 장소에서 만난다는 뜻)"라는 시를 쓰고 전사한 일이 있습니다. 요몇일전 일본 여객기(보잉747)가 추락하여 520여명이나 떼죽음을 당했는데, 엇그제 영국 여객기(보잉747)가 이륙하다가 엔진에 불이 나서 50여명이나 죽었습니다. 어제는 우리 교회 청년의 부친이 세상을 떠나서 장례식을 했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지체된다면 죽음과 랑데부를 가져야 합니다. 죽음은 갑자기 들이 닥치기도 하고 천천히 다가 오기도 합니다.그러나 죽음은 반드시 찾아 오고 야 맙니다. 건강 상태가 아주 좋은 사람이 몇일 안에 죽는 수도 있고 병원 침대에서 다 죽어가던 사람이 10년, 20년 오래 사는 수도 있습니다. 죽음이란 신비스러우면서도 확실한 사실입니다. 저 공동묘지나 무덤은, 죽음은 반드시 찾아 온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에덴동산 은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죄와 죽음은 그 문에 들어 갈 수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너는 이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다 따 먹어도 좋지만, 한가지만은 먹지 말라. 만일 그 나무와 열매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고 말씀하 셨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그 금지된 열매를 따 먹고, 그 순간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육신적으로도 서서히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다 비슷한 과정을 밟습니다.

하나님은 아담부터 노아까지 아홉 사람의 이름을 적으셨는데 그 들 중에 한분이 에녹입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어 갔습니다. 그리고 모두 "죽었다, 죽었다."는 말이 계속되는데 이 기록은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이 실현된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열왕기에도 보면 "어느 왕이 살다... 치리하다... 죽었다. 살다... 치리하다... 죽었다."는 말이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네가 죽을 때가 다가온다"고 말씀하셨고, 에스겔에게는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고 말씀하셨고, 히스기야 왕에게는 "너는 네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이사야 38:1)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님께서도 죽음에 관해 종종 말씀하셨습니다. 한 거지가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웠다고 말씀하시고, 한 부자는 죽어 지옥으로 떨어진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16:13-31). 또한 어리석은 한 농부에게 오늘밤 잠잘때 죽으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누가복음 12:13- 21). 또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이 죄악중에 죽으리라(요한복음 8:24)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성경은 많은 무리의 죽음도 말씀하셨습니다. 바로왕과 그의 군대가 홍해바다에서 죽은 사실(출애굽기 14장)과 산혜립의 군대185,000명이 하루밤에 하나님의 천사에 의해 죽은 사실 도 말씀하고 있습니다(열왕기하 19:35-36). 성경은 아마겟돈 전쟁때 수백만의 사람이 죽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계시록 16,19장). 그리고 세례요한이나 스데반 같은 사람은 용감하게 죽은 것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어 언제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죽음에 관한 말씀은 성경 장장마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공중에 재림하실때 우리가 살아있게 된다면 우리는 죽음을 보지않은 채,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이 홀연히 변화되어 들리워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때, 옆에 참여하는 성도는 얼 마나 영광스럽겠읍니까?

1.죽음의 기원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죽음은 죄로부터 생겨났다고 했습니다. 에덴동산의 이야기가 그것을 설명해 줍니다. 첫번 사람이 범죄한때부터 죽음은 모든 후손에게 전달되어 오는 것입니다. 사실로 죽음은 모든 인간뿐 아니라, 모든 자연까지도 오염시켰습니다. 꽃은 피었다 죽 어버리고, 나무의 푸른 잎도 말라 죽습니다. 모든 동물도 죽어갑니다. 우리 모두가 몸 속에 죽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뼈는 부서지게 되고, 치아는 썩어가고 있으며, 머리는 희어지고 또 빠져 없어지고 있습니다. 시력은 점점 약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암이 퍼져 가고 있고, 심장의 근육은 점점 약해지고 잇으며, 혈압은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죽음은 우리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신유의 은사를 너무 강조하는 분은 우리가 건강치 못한 것은 믿음이 약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완전한 건강을 갖기 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병들면 병원에 갑니다. 안경도 쓰고, 보청기를 씁니다. 그리고 이가 아프면 치과에도 갑니다. 결국 죽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서 병을 고쳐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죽음이 손을 묶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재 림할 때까지는 결코 완전한 몸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본문에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대로 우리는 매일 매일 죽음의 운명적인 시간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기치 않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비행 기 사고, 자동차 사고, 익사사고 등으로, 또한 질병으로 죽고, 자살해서 죽습니다. 그래서 건축업자들이 기억해야 될 말이 있는데, 즉 "모든 문과 계단은 큰 관이 들어올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들은 죽음을 겁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정복 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소망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죽음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죽음은 구원 받을 수 있는 모든 기회가 끝나게 합니다. 지금이라도 죽음이 우리 앞에 성큼 나타날지 모릅니다.

2.죽을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①스리스도인이 죽을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몸은 무덤으로 갑니다. 그 무덤은 공동묘지일 수도 있고, 바다 밑일 수도 있고, 사막의 모래일 수도 있고, 산 꼭대기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몸은 썩어서 에수님이 오실때 까지 남아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공중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인의 몸은 다시 부활하여 예수님의 몸 과 같이 되어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몸은 부활하지 못하고 천년을 더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나 무덤에서 영혼도 잠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몸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한다"(고린도후서 5:8)고 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1:23-24에서는 "내가 그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욱 유익하리라"이 말씀에서 우리의 영혼, 즉 진정한 자아는 죽는 순간 올라가 그리스도와 함께 거 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영혼도 잠을 잔다면 1,900여년전에 죽은 바울은 아직도 예수님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영혼이 잠잔다는 근거가 될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 그의 몸은 무덤으로 가지만 그의 영혼은 올라가 주와 함께 거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한 우리의 영혼은 빛의 세계로 날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강도가 회개하며 죽어갈 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43)고 말씀 해 주셨습니다. 내일이 아니고 천년후가 아니라 "오늘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가 없읍니다. 오직 저주의 세상에서 행복한 하늘 나라에로 이주(translation)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죽음을 준비할 필요는 있습니다. 어느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그의 공적이 시험을 받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가 없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영광을 위한 업적은 심판 의 불을 견디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너는 예수님의 공로 때문에 천국에는 들어갈 수 있으나 주님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기 때문에 너 받을 상급은 없느니라"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지 않습니다. 해가 지면 함께 사라져 없어질 것을 위해 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위와 재물과 쾌락을 얻는데만 생애를 허비하는 이가 있습니다. 마침내 자기를 구원해 주신 주님을 위해서는 아무 한것도 없이 빈 손으로 주님앞에 서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이런 삶을 산다면 죽을 준비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빈 손으로 주님을 만나게 이제부터라도 그를 위해 바쁘게 일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죽음이 닥쳐 오면 더 이상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 다. 사랑하는 자식을 구원하지 못한채 죽지는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9:4)고 했습니다.

②잃어버린 죄인이 죽을 때는 무슨 일이 생기는가?

누가복음 16:2-23절에 "부자는 죽어서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라고 한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거절한 사람이 죽을 때는 고통을 의식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몸은 무덤으로 가고 그 영혼은 고통의 장소로 가게 됩니다. 후에는 몸이 부활하여 영혼과 다시 합쳐지는 때가 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죄인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불못에 던지워져서 극심한 고통이 시작됩니다.

3. 죽은 후에도 구원받을 기회가 있는가?

그 해답을 결단코 "아니요"입니다. 전도서 11:3에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구원 받았던지 멸망 받았던지 영원히 그대로 있게 됩니다. 죽은 후에는 회개 할 기회가 없습니다. 복음을 들을 수 없고 긍휼울 베푸는 자도 없습니다. 죽은 후에 불신자에게는 심판과 저주와 고통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지옥에 떨어진 사람에게 말하기를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이 끼어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 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 도 없게 하였느니라"(누가복음 16:26)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구와 태양사이를 9,300만 마일의 간격을 두셨습니다. 영원한 멸망에 떨어진 죄인은 천국과 지옥사이의 구렁에서 지옥편에 영원히 머물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이 그리스도께 나오라고 간절히 부르고 계십 니다. 죽은 후에는 또 다른 기회가 없습니다.

4. 죽는 자리에서 한 회개는 어떤가?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믿는지 아닌지가 문제입니다. 죽기 전에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것은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하면 침상에서 한 약속대로 사는지 안사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번만 살려 주시면 예수님 잘 믿고 교회에 잘 다니겠다"고 약속한 대로 퇴원하고 나서 교회에 잘 다니고 신앙생활 잘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어떤 이는 철석같이 약속하고 퇴원한 후에는 전혀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대로 살지 않고 여전히 교회에 안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구워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다급할 때는 예수님을 찾다가도 평안해지면 변해 버리는데 이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진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확실한 구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5. 항상 있는 죽음의 가능성

죽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갑자기 당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교통사고, 자살, 강도, 전쟁, 심장마비 등 모두 예기치 못했던 갑작스런 죽음이기 때문에 살려 달라고 고함도 못치고, 회개할 기외도 없이 죽어 준비없이 하나님을 대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워받지 못했다고 원망하거나 변명할 수는 없습니다. 산지 지방에 교회가 있고, 성경이 있고, 서적이 있습니다. 복음은 강단에서, 라디오와 TV에서도 전파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사람들은 변명할 길이 없습니다. 잠언 29:1에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 하고 피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 나와 구원 받으시기 바랍니다.

6. 죽음을 정복한 사람

우리 주 예수님은 요셉의 무덤에서 부활 하실때 나와 여러분을 위해서 죽음을 정복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사셨으므로 우리도 살게 됩니다. 우리의 몸은 예수님이 공중에 재림할 때까지 무덤에서 잠을 자게 될지라도 우리의 영은 죽을 때 그의 계신 곳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그리스도인에게 두려움으로 사로 잡을 수 없습니다. 죽음이 올테면 오라고 하십시요.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비웃을 수 있습니다. 죽음은 죄악된 세상에서 천국으로 이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면 가장 훌륭한 사건이 될 수 있습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죽음은 찬물을 건너는 것도 아니며, 차디찬 손으로 목을 누르는 것도 아니며, 얼굴에 어름같이 찬 기울을 불어 대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죄와 슬픔과 실망의 끝 입니다. 염려와 근심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순간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내게 사는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 이니라"(빌립보서1:21)고 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면 죽는 것은 유익이 되고 영광이 됩니다. 그러면 죽음이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를 줍니까? 모든 기회의 종말입니까? 아니면 축복의 시작이 됩니까? 위로 올라가게 됩니까? 아래로 내려가게 됩니까? 천 국입니까? 아니면 지옥입니까? 선택은 여러분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천국이 되든지, 죄와 지옥이 되든지 말입니다. 한 작은 소년이 바닷가에서 모래를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모래로 한 도시를 건설합니다. 그안에 집도 짓고, 가게도 만들고, 예배당도 짓습니다. 그러면서 해가 지는 줄을 몰랐습니다. 잠시후 조수가 밀려와서 그 도시를 다 쓸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소년은 물결을 피해 도망갔습니다. 그 소년의 큰 형이 달려나와 실망한 동생을 안아다 안전한 곳에 놓고 또 집으로 데겨 갔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시간이라는 모래위에 놀고 있는 것입니다. 장난감 집도 짓고, 세상을 위해 짧은 생애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분주해서 죽음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분주해서 죽음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죽음이 와서 우리와 우리들이 여러 해 걸려서 쌓아 올린 것들을 일순간에 쓸어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큰 형님 되시는 예수님께서 그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가 내려와서 능역있는 팔로 우리를 안아서 밝고 빛난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가기 때문입니다. 단,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믿고 그를 위해 살아야 됩니다. 죄가 하나도 없어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중심에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그르르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가족, 친척, 우리 이웃에 아직도 멸망해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세계에 복음을 듣지 못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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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결혼식 설교
 
 

 


 
결혼 예식 설교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13:4-13   행복한 가정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서론

1. 먼저 이렇게 혼인 예배를 들릴 수 있게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무엇보다도 귀한 가정 대사에 제가 주례를 맞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축하드립니다.

 그간 이 결혼 예식이 있기 까지 여러 모양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특별히 양가의 부모님의 사랑의 수고에 감사와 찬앙을 드립니다.

2. 특별히 여기 신분00는 00 선생님과 00 여사님의 삼녀로써 어릴 때부터 정숙함으로 일등 신부감으로 잘 키워주셨습니다.  넘 예쁘고 축복이 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3. 또한 여기 신랑 000 군은 000 선생님과 000 여사님의 차남으로써 최고의 엄하면서 합리적인 사람으로 키위주시고 더구나 어릴 때부터 신앙으로 자라난 참신한 일등 신랑감입니다. 

 

4. 이런 가문과 가정에서 제가 더 할말이 없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오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행복한 가정이 되는 비결 몇 말씀드리고져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잘 믿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오늘 성경 고린도전서에는  바울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이 다메셋이라는 곳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 받고 자신이 기도가운데 개척한 고린도 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곳에 담긴 메시지는 사랑이라는 제목이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원리가 있습니다

   두 분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먼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두분은 그런 신앙을 고백한 그리스도인 입니다.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잘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세우신 몸된 교회를 잘 섬기는 것입니다. 요즘 결혼을 하고 2,3년지난면 몇 번의 고비가 있습니다. 그때 신앙 곧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은 해결책이 있습니다. 문제의 정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가정은 수숩이 어럽습니다.

더불어 위로 하나님을 믿는 것 처럼 서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깨지면 모든 것이 깨집니다. 저사람이 콩으로 메주를 쑷대도 나는 믿는다는 확신을 가질때 좀 늦어도 바쁜가보다 하지... 믿음이 없으면 별 생각을 다하는 것입니다. 두분은 이런 행복한 가정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립니다.

 

둘째는, 소망이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사도 바울과 고린도 성도들에게 좀 힘들일이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희망 소망 을 가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두분이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좀 어려워도 내일의 희망있고 비젼을 있다는 것을 바라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자녀에 대한 소망 사업에 대한 비젼 헌신에 대한 포부를 가지시고 위를 바라보는 두분이 될 때 행복의 파랑새는 이집에 계속 머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은 하면 관계가 더 넓어 집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닙니다. 결혼 전에는 혼자의 관계가 이제는 두 셋 넷으로 복잡해 집니다.  특별히 양가의 부모님를 잘 섬기는 부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낳으신 수고 기르신 수고 아무것도 입지 않았을 때 수치를 가려주신 분이 부모님입니다. 양가의 부모님의 관계 어르신들과의 관계가 더 좋아 지는 것이 행복입니다.  부모하고 원수가 되고  부모님 않보는 사람 모든 것 다 가졌으나 행복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그리고 친구 친척 동료 교우 이웃에게 진정한 장미의 향기가 풍기는 두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세번째로,  사랑이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여기 사도바울이 세우신 고린도교회와 성도의 관계에서 최고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누구나 머물고싶고 함께 하고 싶으나 미움이 있는 곳에는 다 피라고 싶어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가 부부관계입니다. 그 속에 결혼은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부모를 떠나는 독립선언입니다. 그런 뜻에는 의무가 있는가 하면 책임도 있습니다. 이제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마음도 하나 몸도 하나 주머니도 하나 집도하나 침대도 하나입니다.

 그 하나됨을 이루어 가는 진한 에너지가 있는데  바로 사랑입니다.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함 같이하라입니다. 먼저 사랑하는 남편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와 허물을 덮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해 합니다. 또 신부는 사랑만 받는 관계가 아니라 복종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복종은 내 의견이 다르드리도 따르는 것입니다. 순종은 내 의견이 같을 때 따르는 것이라면 복종은 내 의견이 다르드라고 하나님이 세우신 남편이기에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말씀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입니다. 자기 생명까지 내어 주신 피의 사랑입니다. 아내를 위해서 목이라도 내어 놓는 아가폐적 사랑입니다. 이유가 어떠하든  논리적으로 맞던 틀리던 무조건 두분이 이런 복종과 사랑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행복합니다. 여자를 힘으로 지배하라고 하지 말고 사랑으로 하고.. 남자를 말로 이기려고 하지말고 순복으로 이기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되어서 행복이 뚝뚝 떨어지는 가정이루시기를 바랍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사랑이니라  아멘

 

끝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르는데 저와 오신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주례를 맡아 달라고 찾아오는 젊이들에게 반드시 두 가지 질문에 답을 하면 약속을 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사실이 분명하지를 묻습니다. 아니면 믿게 하고 예수를 않믿는다고하면 노합니다.  또 하나는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죽음이외엔 갈라서는 일이 없다고 약속한다고 하면 주례를 응답합니다.

 

  제와 여기 계신분들이 바로 지금까지 이 두사람 곁에서 여러모양으로 함께 하셨던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결혼했기에 끝이 아니라 더욱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책망해 주시기고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증인석에 앉아 계셨던 분들이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대 일조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신분의 가정에서 딸을 보낸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좋은 사위 아들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시고 신랑의 가정에서는 새 사람이 들어 왔으니 어떻게 하나 보자하고 감시 카메라 달라 놓치 말고 내 딸이라고 이제는 내 식구다 생각하시고 예쁘게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두 이 두 사람의  행복한 가정이루고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다같이 힘찬 응원에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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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도예배  추도 예배 순서

 

 

 

 

 

 

추도 예배 순서
  
  인도자 ----  고000님(호칭)의 추도예배를 드리겠습니다.
  묵   도  --------------- (조용히 고인을 생각하며 묵상)----------------- 다같이
  찬   송  --------------- (288장) ----------------------------------- 다같이
  기   도  --------------- (아래 기도문을 낭독해도 좋다) --------------- 집례자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 계신 하나님 오늘은 먼저 하늘 나라로 가신
     고 000님을  추도하기 위하여 저희가 모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사 주님
     의 평강으로 채워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연약한 저
     희들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부족했던 모든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시
     고 저희들이 하나님 앞에서 뿐 아니라 육신의 부모와 어른들에게 잘
     못한 것을 통회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더욱 굳센 믿음
     으로 채워 주셔서 자손 만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저
     희들로 하여금 땅만 내려다보고 슬퍼하지 않게 하시고 심령의 눈을
     떠서 하늘의 영광을 능히 쳐다보고 영원한 소망을 가지게 하옵소서
     이 시간의 모든 절차를 맡아 인도 하사 하나님께 영광되고 저희들에
     게 새로운 은혜와 축복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
     활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성경봉독 --------(집례자가 아래 예문을 선택하여 읽어도 좋다)----- 집례자
  설   교 -------------------- (위로의 말씀 간단히) ---------------------------집례자
시편 90:1-10 (모세의 기도)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하나님이 세우시고 크게 들어 사용하신 분이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1) 3절 하나님은 인간의 창조하시고 티끌로 돌아가게 하신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이 있다.
2) 4-6절 인간이 사는 동안이 한순간, 홍수처럼 쓸어가고 아침의 풀과 같이 피고 시든다.
3) 10절 인간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수고와 슬품이다. 한번 와서 각자의 시간표대로 살다가 간다 생일이 있는가 하면 기일이 있다. 오늘이 00기일이다. 우리도 같다 아멘
 찬   송 ---------------------------(492장) ----------------------------------다같이
  추모의기도--------------(무릎을 끓고 고인을 생각하며 기도)-------------------집례자
  (1분 정도 공동 기도 한후 집례자가 계속해서 기도한다. 참고)
    “거룩하신 하나님 저희는 현재만 보고 미래를 볼 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믿게 하여 주
     셨으니 무한히 감사합니다. 저희들로 하여금 이 영원한 세계를 바라
     보고 항상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모든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신앙을
     주시옵소서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기업을 누리는 후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추도사-------------------------------------------------------
       (고인의 행적이나 성품, 유훈, 인상 깊었던 일등을 말합니다.)
찬    송 --------------------------------------------------------다같이
폐회기도 --------------------------------------------------------다같이
(다같이 주기도문이나 한 사람이 대표하고 마친다)
 (음식이나 상을 차리지 않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끝나고 함께 음식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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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예식 / 혼인예식설교 

  

결혼의 의미 


말씀:창2:22-24

제목:결혼의 의미

먼저 ○○○군과 ○○○양이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만나서 오늘 이렇게 하나님과 많은 어른들, 친지들의 축복가운데 복된 결혼 예식을 올리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또 두분에게도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 두 분이 손잡고 헤쳐 나가는 인생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무한하신 축복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 신랑신부, 결혼은 왜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대부분은 사랑하니까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사랑해야 결혼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대답은 한 60점정도 밖에 안되는 대답입니다. 결혼은 단순히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깃들여져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결혼의 너무나 신성한 의미를 두분에게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오늘 여기서 장담합니다. 오늘 이 말씀 두분이 꼭 새기고 살아가시면 앞으로 두분이 살아가는 인생길에 100% 행복이 보장될 것입니다. 꼭 명심하고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많이 받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하셔야죠.

1.하나님의 신성한 섭리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결혼은 그냥 내 마음,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창조질서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오늘 제가 봉독해드린 말씀 창2:2절에 있잖아요.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무슨 말씀이예요?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남과 여로 만드셔서 필연적으로 둘이 만나서 하나가 되어 살도록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둘이 만나서 몸과 마음과 뜻과 영혼이 하나 되어 서로 사랑하며 위로하며 격려하고 도우며 생육하고 번성할 때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고 우리 인생에게도 행복한 삶이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두 분, 이 사실을 기억하세요. 결혼은 그냥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창조의 질서입니다. 따라서 이 결혼이 그냥 인간대 인간의 만남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의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너무나 신성한 예식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이 가정을 아름답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하나님의 동산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생활을 하나님의 뜻대로 꾸려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결혼하는 두 분은 오늘 결혼을 하고 이루게 될 가정이 하나님의 정하신 신성한 창조의 질서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항상 기억하고 가정을 거룩하고 아름답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꾸려나갈 때에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한 인생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하나됨을 의미합니다.

좀전에 말씀드린 오늘말씀 2:2절에서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그러니까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과 뜻과 믿음과 방향과 목표와 가치관, 이 모든 것들이 하나 되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수레의 바퀴가 따로따로 굴러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수레가 막 달려가다가 한쪽 바퀴는 안가고 다른 바퀴만 굴러가면 어떻게 됩니까? 어떻게 되긴 어떻게 되겠어요? 수레가 길옆으로 나뒹굴어지지요.

여러분, 부부는 한몸입니다. 인생의 한 수레를 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두 분은 모든 면에서 하나 되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하나되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가정을 거룩하고 아름답고 깨끗하게 지키는 일에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하나되어야 합니다.

물론 잘 안될때 있을 거예요.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무릎꿇고 기도하면서 과연 어떻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인지를 생각하며 자신의 뜻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 되어 여러분의 인생의 수레가 저 천국에 도달하기까지 늘 원만하고 아름답게 굴러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안 하세요.

3.돕는 배필이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결혼의 세 번째 의미는 돕는 배필입니다. 창2:18절에 보면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것은 서로 하나되어 사랑하고 위로하며 생육하고 번성케 함과 동시에 서로 돕는 자가 되어 살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이죠.

여러분, 그리고 신랑신부 두분, 이 말씀을 잘 되새겨 보세요. 돕는 배필이란 말이죠,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우리는 자꾸만 상대방이 나를 받아주고, 나의 욕구를 채워주고 하기를 바라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지요. 도리어 내가 상대방에게 사랑을 주고, 모자라는 것을 채워주고, 요구를 들어주고 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렇게 살아가는 가정은 분명 행복의 꽃이 피어납니다. 우리 두분은 앞으로 꼭 이 말씀을 명심하고 서로 내가 먼저 사랑하고, 내가 먼저 채워주고, 내가 먼저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갈때에 정말 화목하고 복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5.서로 순종하고 아껴주기 위함입니다.

엡5:22에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면에 엡5:25에서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내는 남편을 대할때에 주님께 순종하는 것 같이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남편은 아내를 대할 때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주신 것처럼 자기 목숨보다도 아내를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분, 이 말씀대로 해보세요. 여러 가지 이유를 댈 필요없습니다. 그냥 하나님 말씀대로 하면 행복은 저절로 오는 겁니다. 안그래요,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보다 더 사랑한다면 거기에 무슨 갈등이 있겠으며, 거기에 무슨 불행이 있겠습니까?

3.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창1:28에 보면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인생을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피조물들을 최상의 상태로 잘 관리하는 사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육하고 번성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자녀도 많이 나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두분은 결혼해서 사랑도 많이 해서 아이도 많이 낳아 하나님의 뜻대로 잘 양육하여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귀하게 쓰임받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결혼하는 두분은 이러한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며 정말 몸과 마음과 믿음이 서로 하나 되고, 서로 도와주는 배필이 되고, 서로 아껴주고 존중해주고 자기 몸처럼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아갈때에 하나님께도 영광을 드리고 여러분의 삶도 행복이 가득한 복된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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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 이야기로 마음의 세계는 6단계를 알아본다

 

 

    

마음의 세계는 6단계를 거치면서 변화한다. 

 

세계의 문학가들은 이렇게 짧은 분량에 이토록 심오한 인생이 함축된 문학적인 글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야기 구성에 보색 대비가 잘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꽃이 이쁘다고 붉게만 그리면 재미가 없습니다.

붉은 꽃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반대된는 초록빛 잎사귀를 그려 넣듯이,

탕자 이야기에는 보색 대비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탕자가 돼지우리에서 돼지와 함께 뒹굴다 굶주림에 지쳐서 돼지가 먹는 열매를 먹으려고 하는 장면은 한없이 어두운 모습이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서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손에 가락지를 끼고 발에 신을 신고 살진 송아지 요리를 먹는 장면은 한없이 밝은 모습입니다.


탕자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시작과 끝을 정확하게 그려 놓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둘째 아들처럼 먼저 자신을 높이기 시작합니다.

대개 사람은 남이 하는 것보다 한 두 번 잘할 때가 있는데, 자신이 잘못한 것은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잘한 일들은 오랫동안 기억합니다.

돈을 좀 벌거나 남이 못하는 일을 이루면 혼자서 느끼는 흐뭇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생각하면 즐겁고 뿌듯합니다.

그런 마음이 한 겹 두 겹 쌓이면서 '나는 잘하고 있어!' 라는 마음으로 굳어집니다.

저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 저는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 떄 우리 반 70명 중에서 3등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잘하기는 처음이었는데, 아버지께 성적표를 갖다 드리니까 무척 기뻐하시면서 저를 할아버지께 데리고 가셨습니다.

"아버님, 옥수가 이번에 3등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그 이야기에 기특해하시면서 "그놈 참, 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10살 때 일이면 지금부터 거의 60년 전인데, 아직도 그 광경이 생생합니다.

그때부터 나는 공부를 잘한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운동회때 8명이 다리기를 해서 1등을 한 적이 한 번 있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달리기를 잘한다는 마음이 자리잡았습니다.


자기가 잘한다는 마음을 가지면 마음이 높아집니다.

둘째 아들도 자기가 잘한다는 마음이 있어서 마음이 높아졌습니다.

마음이 높아지면 태만하고 방종해지기 시작합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많은 재산을 먼 나라에 가서 허비해 버렸습니다.

마음이 겸비하면 기생에게 홀리지 않는데, 자기를 믿으니까 태만해지고 방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거만해지면 방탕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면 꼭 실패합니다.

사업을 해서 돈을 잘 벌다가도 '내가 사업을 잘해' 하고 자기를 믿는 마음이 생기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살다가 결국 망합니다.

 

사람은 왜 망하는 것을 싫어합니까?

망하면 고통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들도 망한 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편히 자지 못하고 좋은 옷도 입을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후회가 시작되는 단계가 옵니다.


사람의 마음은 똑같이 이렇게 흘러갑니다.

산골짜기에 빗방울이 떨어지면 점점 낮은 데로 흘러서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고, 바다로 흘러가 바닷물이 되듯이,

사람의 마음도 흘러가는 길이 있습니다.

사람이 그냥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잘한다고 믿으면 마음이 높아지고, 마음이 높아지면 남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을 따라서 방탕하게 살고, 그러다 망합니다.

결국 망하고 나면 고통이 찾아옵니다.

망해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집을 빼앗기고, 차를 빼앗기고 ···. 옛날에는 돈을 흥청망청 썼는데, 이제는 먹을 게 없어서 버리는 채소를 시장에서 가져다 먹고,

 아이들 학용품 하나도 사주지 못하고 ···. 망하면 그렇게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려움을 겪으면 후회하고 돌이킵니다.


둘째 아들이 망한 다음 배가 너무 고프니까 후회하고 돌이켰습니다.

'이러다가 내가 굶어 죽겠다!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일꾼이 아주 많은데,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아버지 집으로 가야겠다!'

 

일단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면 삶이 행복하게 바뀝니다.

인생은 다 이렇게 흘러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도 중요하지만 실패도 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뉘우치기도 하고 돌이킬 때도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믿는 마음이 강한 사람은 반드시 실패하게 됩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틀린 것도 알고, 자신의 부족한 것도 볼 수 있고, 못난 것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탕자 이야기는 우리 마음의 세계를 여섯 단계로 정확하게 그려 놓았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을 믿는 단계고,

두 번째는 태만과 방종의 단계입니다.

자신을 믿으면 사람이 태만해집니다.

결국 망하는 단계가 바로 세 번째 마음의 단계입니다.

망하고 나면 고통이 찾아오는 네 번째 단계에 이르고,

고통스럽다 보면 다섯 번째 단계로 뉘우칩니다.

자신을 믿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뉘우칠 때, 마지막 여섯 번째 단계로 복을 받습니다.

사람은 이 단계들을 거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마음을 보면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 정확하게 보입니다.

인생 경험이 적은 사람들은 주로 첫 번째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자신을 믿기 때문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하는 일이 다 잘될 것이라고 믿어

남의 이야기 듣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어쩌다 잘못해서 도박이나 마약이나 게임중독에 빠졌다 해도

마음의 세계를 정확하게 알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세계를 꼭 배워야 합니다.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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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예배설교 / 영원한 기쁨의 나라로

 

 

 

*임종예배설교

말씀 : 계7:15~17

사랑하는 ○○○성도님이 우리 곁은 떠나셨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는 이분을 만날 수도 없고, 이야기 할 수도 없고, 사랑을 나눌 수도 없고, 섬길 수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너무나 슬퍼하고 안타까워한다. 물론 그래서 우리도 마음도 안타깝고 아프다.

그러나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심하거나 끝내 안타까워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님은 이제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지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셨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헤어져 있는 것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다시 만날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을 보라. 15절에 보면 성도들은 하나님의 보좌앞에 서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장막을 처 주신다고 하였다. 얼마나 대단한가? 세상에서도 영광스러운 보좌 앞에서 산다면 대단할 진대 하물며 하나님의 보좌 앞으면 얼마나 영광스럽겠는가?

또 오늘 16절에서는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상하지도 않느다고 하셨다. 그리고 17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라고 하셨다.

이 또한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생명수 샘물은 영원하고 완전한 생명수이다. 먹고 영생하는 생명수이다. 그 생명은 완전하다. 그래서 목마르지도 주리지도 아프지도 상처를 당하지도 않는다.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신다는 것은 하늘나라에 흘리는 눈물으 씻어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흘렸던 눈물, 즉 모든 아픔과 상처와 고통과 슬픔을 완전히 치유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거기서는 어떤 고통도 아픔도 저주도 슬픔도 질병도 늙음도 죽음도 없다. 그야말로 완전한 영광의 나라요, 완전한 기쁨과 평안과 위로의 나라이다.

우리 성도님이 바로 거기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비록 이 분을 보내는 마음은 아프기 그지 없지만 그 영원한 나라에서 그 한없는 기쁨과 영광과 은혜를 누리고 계실 성도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위로를 받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성도를 기쁨으로 만나기 위하여 성도의 그 아름답고 깨끗하고 순수한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서 주님과 동행하자.

특별히 아직 하나님을 모르시는 분들은 정말 겸손히 인생을 돌아보자. 인생은 무지하고 연약한 존재이다. 우리가 우주만물에 대하여 아는 것은 천만분의 일도 안된다. 더구나 죽음에 대해서는 인간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라고도 한다. 죽으며 귀신이 된다고 한다. 죽어서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갓 보잘것없는 인간의 지식과 이성에 의한 무지한 생각일 뿐이다. 알 수 없는 일에 대한 상상에 불과하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일 뿐이다.

그러므로 정말 자신의 그 작은 지식과 경험과 이성으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그 말씀을 통하여 인생의 의미를 바르게 알자. 그리하여 사랑하는 성도님이 남겨 놓은 아름다운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 선하게 의롭게 믿음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다가 머잖아 주님께서 오라 부르실 때에 할렐루야 찬양하면서 주님품으로 돌아가서 사랑하는 성도님과 감격과 기쁨으로 재회하는 복된 인생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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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소금과 빛


 


 

마태복음 5:13∼16

우리 인생에서 언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먼저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나에 대한 정체성을 확실하게 깨닫고 그 목적대로 살아갈 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 가운데서 소금과 빛의 삶을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소금의 삶이요 빛의 삶일까요.

먼저 소금의 사명입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9:50)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골4:6) 소금이 맛을 내는 것처럼 우리의 말을 은혜 가운데 화평케 하는 말로써 화목케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5장 18∼19절에서는 하나님은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우리에게 주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직책을 감당하기 위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했다는 것입니다(고후6:3).

이제 우리 모두 화목케 하는 사신이 되어 이 직책을 잘 감당하여 나로 인해 우리의 가정과 사회, 나라와 정치가 회복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받는 축복된 인생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다음은 빛의 사명입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은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 성도는 성도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옳은 행실이 있고 이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이 행위를 요한복음 15장 16∼17절에서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사랑의 과실을 풍성히 맺어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리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항상 넘치시길 축원합니다.

김봉구 여수문수제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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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말씀  : 헌신예배설교( 가난한 여인의 믿음)

 


 


말씀 : 막12:41-44

제목 : 한 가난한 여인의 믿음

1.한 어린 소녀의 감동적인 순교 이야기

저는 오늘 먼저 여러분들에게 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이 이미 목사님을 통해서 혹은 인터넷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알고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메시지에 너무나 어울리는 이야기이기에 말씀드립니다.

이 사건은 1999년 4월20일, 미국 콜로라도주의 리틀턴이라는 한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곳에 콜롬바인 하이스쿨이 있었는데 이 학교에서 마피아단원이며 히틀러 신봉자였던 학생 두명이 반친구들이 자기들을 왕따시킨다고 총기를 난사하여 교사 한명을 포함하여 학생 12명이 죽고 30여명이 부상을 당한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고,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끔찍한 사건 속에서도 너무나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17살난 캐시라는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그 참극이 벌어지던 그 현장에서 범인 한명이 캐시 앞에 총구를 들이대며 물었습니다. “Do you believe in God?” ‘너는 하나님을 믿니?’ 물론 하나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 그 여부를 알고 싶어서 던진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은 같은 건 없으니 믿는다고 말하면 죽이겠다는 위협이었습니다.

그러나 캐시는 침착하게 말합니다. “Yes, I believe in God.” ‘네, 나는 하나님을 믿어요.’ 그러자 범인은 총부리를 더 가까이 들이대며 소리를 쳤습니다. “There’s no God.” ‘하나님은 없단 말이야.’ 한번만 더 그런 소리하면 정말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다시 캐시는 말했습니다. “Yes, There is God. And you must follow His path.”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당신도 그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범인의 총구가 불을 뿜기 시작 했고, 결국 17살 소녀 캐시는 그만 피범벅이 되어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그렇게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어떤 분은 이 이야기를 듣다가 그렇게 용감한 신앙의 고백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녀를 기적적으로 살려주셨는지를 듣고 싶어 했을지 모릅니다. 마치 다니엘의 세친구가 평소보다 칠 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 속에서 머리털 하나 그을리지 않고 살아났던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러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로마의 병정들에게 붙잡히실 때 예수님은 열두 영도 넘는 천군천사들을 불러 그들을 요절 낼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당장이라도 뛰어 내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실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녀린 소녀의 죽음을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소녀는 그렇게 주님 품으로 갔고, 그래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캐시의 한 친구가 이 아비규환의 현장속에서 가까스로 몸을 숨겨 숨을 죽이며 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녀는 가까스로 살아나와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낱낱이 알렸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그 흉악한 범인의 총구앞에서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했는지, 그러자 그 범인이 어떻게 악마처럼 캐시에게 총을 쏘아댔는지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세상속에 알려지자 먼저 미국의 크리스챤 teenage들이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함께 ‘Yes, I believe in God.’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T셔츠를 입고 거리를 누비며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Yes, There is God.’ ‘Yes I believe in God.’ 한 도시에서는 3,000여명의 teenage들이 모여서 ‘Yes I believe in God.’이라는 주제로 집회를 열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집회는 많은 도시들로 번져 나갔고, 결국 잠들어 있던 미국 크리스챤들의 양심을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께 헌신하기 보다는 그저 세상의 풍요로운 물질문명에 젖어 안락을 추구하던 삶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회개하고 헌신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한 어린 소녀의 믿음과 헌신이 잠든 미국 크리스찬들을 깨웠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도 너무나 큰 도전으로 다가오지 않습니까? 괴한이 총구를 겨누고 말합니다. “Do you believe in God?” 너 정말 하나님을 믿니? 그렇다면 내가 너를 죽이려고 하는 이 순간 네가 믿는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 속지마라. 하나님은 없다. 이 지금 차라리 나에게 살려달라고 애원을 해라. 그러면 살려주마. 바로 그런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말합니다. ‘Yes, There is God. Yes, I believe in God.’ 하나님은 계십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당신이 나의 육신을 빼앗아 갈 수는 있어도 내 믿음은 빼앗지 못합니다. 당신이 총으로 위협해도 내 영혼을 강탈해 갈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도 주님이 내게 주신 영광의 나라는 빼앗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진실로 주님의 사람이라면 우리에게도 이런 신앙의 고백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영원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 것이기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만이 진정한 진정한 생명과 기쁨과 위로와 평강이 있기에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도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혹시 누군가 우리를 총으로 위협해도, 혹시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이 와도, 혹시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모든 것을 빼앗긴다해도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런 신앙의 고백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저는 헌신예배를 드리면서 이런 신앙의 고백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예배를 드릴 때에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뜨겁게 역사하셔서 성령의 은총으로 이런 믿음과 능력과 용기로 충만함을 덧입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 여인

오늘 본문에는 바로 그런 신앙의 고백으로 헌신하여 주님을 감동시킨 한 여인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사람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보고 계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에 힘을 주고 보란 듯이 많은 헌금을 하고 들어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초라한 행색으로 부끄러운 듯 적은 헌금을 하고 들어갔습니다.

이때 주님의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드는 한 특별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고관대작의 부인도 아니었고, 유명인사도 아니었고, 절세미인은 더더구나 아니었습니다. 그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한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이 여인은 부끄러운 듯 헌금함 앞에 다가와서는 조심스럽게 두 렙돈의 헌금을 하고는 성전으로 들어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을 보신 주님께서 여인을 불러 세우고 흩어져 있던 제자들에게 불러 모아서 말씀했습니다. 43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여러분, 이 말씀을 잘 보십시오.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것을 보고 흩어져 있던 제자들을 일부러 불러 모아서 여인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모습에 너무나 큰 감동을 받으셨으면 일부러 제자들을 불러모아서 이 여인을 칭찬하셨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오늘 이 가난한 과부가 헌금한 두 렙돈이 지금 돈으로 환산하며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그것은 많아봐야 1,000원도 안되는 돈입니다. 렙돈은 당시 화폐의 최소 단위로 1렙돈은 노동자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데나리온의 1/128입니다. 그러니까 하루 품삯을 50,000원으로 친다면 약400원정도 되겠죠. 그러니까 두렙돈은 약800원정도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천원도 안되는 헌금을 하는 여인을 보면서 너무나 감동을 받아 제자들을 일부러 불러 모아서 칭찬했던 것입니다. 왜 그랬는지 그 해답은 44절에 있습니다. 우리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그 돈이 어떤 돈이라고요? 모든 소유, 생활비 전부. 그것이 이 여인의 전 재산이었다니까요? 그것이 이 여인의 생활비 전부였다니까요. 그런데 그걸 주님께 그렸다니까요.

그러니 주님이 어찌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 순진무구한 믿음의 헌신을 보며 어찌 감동을 받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여인이 얼마를 드렸느냐가 아닙니다. 자신의 것을 몽땅 바쳤다는 그 자체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인 것입니다. 여인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것이 재산의 전부였는데요. 그것이 없으면 내일 굶어야 될지도 모르는데요.

그러나 이 여인은 ‘주님, 비록 너무나 적은 돈이지만 이게 내가 가진 것의 전부입니다. 이걸 다 드리면 내일 어떻게 될지 나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믿습니다.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고 공중 나는 새를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이런 하나님께서 대한 전폭적인 신뢰로 주님께 드린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런 믿음이 없이 어떻게 전재산을, 생활비 전부를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믿음이 없었다면 드리기는커녕 도리어 이렇게 원망 했을지도 모릅니다. 주님, 저는 정말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도 정말 저를 사랑하시나요? 주님 나는 너무 가난합니다. 지금 가진 것이라곤 하루의 생활비밖에 없습니다. 나는 남편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도 나를 업신여깁니다. 그런데 주님, 왜 나를 돌아보시지 않습니까? 내 처지가 너무 딱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저를 정말 사랑하시기는 사랑하시는 건가요? 그렇게 말입니다.

설령 그렇게 원망까지는 안할지라도 이렇게 변명할지도 모릅니다. 주님, 저는 정말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정말 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주님, 주님도 내 형편이 어떤지 잘 아시잖아요. 제게 있는 것이라곤 고작 800원 정도입니다. 이것은 오늘 내 생활비입니다. 그러니 이걸 드리고 나면 저는 굶어야 해요. 그러니 이걸 하나님께 드릴 수는 없잖아요. 다음에 좀 여유가 생기면 드릴께요. 다음에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드릴께요.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가난한 과부 여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다 맡겨버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길을 인도해 주실 것으로 믿고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면 기왕 믿을 바에야 이런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대한 무한한 신뢰와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보호하심,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래서 자신의 삶을 주님께 맡기며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지금 상황이 이래요, 환경이 이래요. 전세돈도 마련해야 하고요, 아이들 교육도 시켜야 하고요, 애들 결혼도 시켜야 하고요, 그래서요. 지금은 좀 곤란해요. 나중에 좀 안정이 되면 그때 할께요. 그때까지만 참아 주세요.

그러면 이건 뭔가 잘 못 믿는 거예요.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신다 그랬잖아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공중나는 새를 보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말씀하셨잖아요? 이런 주님의 말씀을 믿으면 못할 게 뭐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순진한 믿음의 사람들을 찾습니다. 순진한 믿음의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보세요. 열두해를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주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면 나을 거라는 순진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을 터치했을 때 은혜를 받았습니다. 로마의 백부장이 순진한 믿음으로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하는 고백을 했을 때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며 은혜를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는데 순진하게 그대로 했습니다. 다윗은 그렇게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여러번 있었지만 그냥 순진하게 하나님께서 처리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 은혜와 능력과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순진하게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따르는 그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갓난아기처럼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주님이 인도하십니다. 시37:5,6절을 보세요.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그야말로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한 믿음으로 주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의 은총을 풍성하게 맛보며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전적인 신뢰로 헌신한 여인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또한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것은 전적인 신뢰에 전적인 헌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기에 자신의 것을 몽땅 예수님께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뭐, 너무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무엇에 정열을 바칩니까? 무엇에 시간과 물질과 힘과 지식과 재능을 투자합니까? 말할 것도 없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사랑하고 가장 기쁨과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곳에 투자합니다. 그런 믿음이 있는 곳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과연 우리를 정말 행복하게 하고 가치있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과연 우리에게 진정한 생명의 은총과 자유와 평화를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완전히 신뢰하고 따라 갈 수 있는 분이 누구십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가장 귀한 분에게 어찌 가장 좋은 것들을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가장 귀한 일에 어찌 우리의 정열을 투자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바보가 이 귀한 일에 정열을 바치지 않고 별로 귀하지도 가치도 없는 일에 인생을 바치겠습니까? 어찌 이 좋은 일에 몸과 마음과 시간이 가지 않겠습니까?

어떤 작은 시골에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주일날 웬일인지 이분이 교회를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다 마치고 목사님이 심방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 글쎄, 이 분이 오이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목사님이 안타까워서 ‘집사님, 어떻게 된 겁니까? 주일날 이렇게 오이밭에서 일을 하고 계시다니요?’ 그러니까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너무 바빠서요. 오늘은 교회에 가면 몸은 예배당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이 오이밭에 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러려면 차라리 몸은 오이밭에 있고 마음은 예배당에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여러분은 어떤 게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비록 몸은 밭에 있어도 마음은 교회에 있는 게 낫습니까? 아니면 몸은 교회에 있고 마음은 밭에 있는 것이 낫습니까? 낫기는 뭐가 낫습니까? 둘다 틀린 거지요. 마음이 있으면 몸도 가고, 몸이 가면 마음도 같이 가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 제가 지금 바빠서 교회일을 잘 못하는데요 그래도 마음만은 늘 교회에 있답니다. 그렇게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다. 정말 마음이 있으면 몸도 시간도 물질도 정열도 가게 되어 있는 겁니다. 아니 정말 사랑하는데 몸이 안갑니까? 시간이 안갑니까? 물질이 안갑니까? 예수님께서 마6:21절에서 뭐하고 하셨습니까?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바꾸어 말하면 네 마음이 있는 곳에는 네 보물도 있느니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가난한 여인은 하나님께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감사와 가쁨으로 주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생명이요 나의 기쁨이요 내 인생전체를 책임져 주실 분이기에 생활비 전부를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걸 완전힌 믿었기 때문에 주님께 헌신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 뿐 아니라 이 보화를 발견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전 생애를 주님께 드려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은혜를 누리며 살지 않았습니까?

저는 구약성경 중에서 정말 하나님을 갓난아기처럼 신뢰하고 믿고 따른 두사람을 찾는다면 물론 많은 위대한 신앙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노아와 아브라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노아 할아버지를 보십시오. 그는 천하를 다 덮어버릴 비를 내릴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120년이나 그 날을 기다리며 배를 만들었습니다. 이 얼마나 순진한 믿음이며 이 얼마나 놀라운 헌신입니까? 여러분, 그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아니 전세계를 쓸어버릴 홍수를 생각할 수 있습니까? 아니 처음에는 믿었다해도 어떻게 비는 올 생각도 안하는데 120년동안이나 그 말씀을 믿고 배를 지어요? 1년, 2년, 10년, 20년, 50년, 100년을 지나면서 얼마나 많은 시험이 있었겠으며, 얼마나 조롱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노아는 끝까지 갓난아기와 같은 순진한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헌신했습니다. 누가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비웃고 조롱하거나 말거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그냥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거기에 걸었습니다. 자신의 시간과 정열과 물질과 청춘을 거기에 다 바쳤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멸망당하는데 그 가족만 구원받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입니까? 아니, 다 죽고 노아의 여덟식구만 살았다니까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헌신이 그를 살리고 가족을 살리고 결국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이루게 했던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은 어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지시를 내리십니다. 인간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명령 아닙니까?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티끌같이 많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해 놓고 25년이나 지나서 겨우 이삭하나 주시더니 그나마 그 자식을 동물을 잡듯이 잡아서 불에 태워서 번제로 드리라니 어디 말이나 됩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말없이 드립니다. 그건 정말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누가 자녀의 생명을 달라고 할 때 차라리 나를 드리겠다고 말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겠지. 하나님이 나를 해롭게야 하실라고, 하나님께서 내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티끌과 해 주시겠다고 하셨으니 분명 무슨 다른 뜻이 계시겠지 하면서 그냥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오히려 ‘아니 재가 정말 제 자식을 번제로 드리려는 거야.’ 하면서 깜짝 놀라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그의 믿음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삭도 살고 자손이 하늘의 별과같이 번성하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또 사도바울은 어땠습니까?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뒤 자신의 모든 것을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자신의 전생애를 완전히 바쳤습니다. 왜요?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했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는 보화에 비하면 세상의 것들은 배설물과 같이 여겨졌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일말의 미련도 없이 자신의 전생애를 드린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순진한 믿음을 가져야하고, 순진한 믿음을 가졌으면 당연히 순종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분이라면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영원한 생명의 은총이 천하보다 소중한 것이라면 생명이라도 내 놓으라면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때 분명히 주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과 은혜가 충만한 삶이 있을 것입니다.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제 간증을 잠깐 해도 되겠습니까? 저의 고향은 경기도 안성입니다. 그러나 군에서 전역하고 곧바로 포스코에 입사하여 1979년에 이곳에 내려왔으니까 벌써 경상도 사람된 지가 32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렇게 포스코에서 12년을 근무하다가 그만 두고 목사가 되었는데요, 저는 결혼을 하고 아내를 따라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심심하면 한번 나가는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지났을 때 저에게 큰 시련이 왔습니다. 저 자신에게도 시련이 있었지만 더 큰 시련은 아들을 통해서 왔습니다. 큰 아들이 5살 때 큰 질병에 걸려 포항성모병원에서 한 달여 동안 치료를 했지만 도무지 차도가 없어 결국 서울대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만 살려 주십시오, 하나님, 이 아이만 고쳐주십시오. 그러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제 목숨을 내 놓으라면 내 놓겠습니다. 제게 주신 모든 것 송두리째 바치라면 바치겠습니다. 아골골짜기 아니라 그보다 더한 곳도 가겠습니다.’하면서 새벽마다 울며불며 기도했습니다. 한 밤중에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회사에서 퇴근해서 오는 길에 교회에 가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고, 아이는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제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무엇이라도 시키는대로 하겠습니다.」하면서 눈물 흘려 기도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저에게 간절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뜨거운 마음을 주셨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던 주님의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내 남은 생애를 다 주님께 드리기로 하고 저는 사표를 내기로 결단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약하고 간사하고 부족한 게 인간이더라고요. 그렇게 기도하고 결단을 하였지만 저는 몇 달 동안 갈등을 겪었습니다. 막상 사표를 내려고 하니까 정말 막막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내의 반대도 심했고, 솔직히 저도 가장으로서 걱정과 염려가 몰려 왔습니다. 저는 솔직히 유산이라고는 땅 한평, 단 돈 몇 십만원도 받지 못했습니다. 신혼생활을 월급타서 모은 돈 50만원으로 연탄 온돌 단칸방 전세부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자다가 한번은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을 뻔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경제적으로도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일 큰 걱정은 아이들 교육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새벽마다, 밤마다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주님, 주님을 위하여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더욱 온전한 믿음과 용기를 주십시오. 우리로 하여금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이 맡겨주신 일을 감당케 해주십시오. 그때 주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그리하여 결국 1992년, 우리 큰 아이가 초등학교3학년 때 사표를 내고 몇 년간의 신학수업을 거쳐 목사가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정말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정말 갓난아기처럼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맡아주십니다. 저는 그것을 진실로 경험했습니다. 주님의 인도를 따라 이 길을 왔을 때 주님께서는 제가 했던 염려와 걱정들을 말끔히 씻어주셨습니다.

가장 큰 염려였던 아이들 교육문제도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셨습니다. 저는 늦게 목회를 시작하여 신학공부도 많이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시골목회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열명도 안되는 깡촌 교회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한 학년에 대여섯명 밖에 안되는 깡촌학교에 다녔습니다. 물론 과외는 꿈도 못 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돈 별로 안들이고 교육을 모두 마쳤습니다. 큰 아들은 여기서 가까운 일류대학에서 무료로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지금은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모회사 연구원으로 있습니다. 얘는 초등학교때부터 석사과정까지 등록금은 한 푼도 안내고 공부를 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고등학교때까지는 등록금 안내고 다녔고 지방 국립대학을 다녀 그렇게 많은 돈 안들이고 작년에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하여 성실하게 잘살고 있습니다. 큰 녀석은 지난 7월에 결혼도 하여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자랑하려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맡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 후회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둘만 낳을 게 아니라 야곱처럼 한 열두명은 낳는 건데 하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경주시민 교회 성도여려분, 특별히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1,2여전도회원 여러분,

주님을 믿으십니까? 네, 믿으시는 줄 믿습니다. 기왕 믿으실바에야 확실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탁 맡겨버리고 그저 말씀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으로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부분들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진정 용기있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과 교회 위에 놀라운 생명의 역사,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과 우리 경주시민교회위에 이런 놀라운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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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 아동부헌신예배]세월을 아끼라

 


 
제목 ; 세월을 아끼라.

본문 ; 엡 5:15-20

여러분, 오늘 예배가 무슨 예배죠? 예, 주일학교 헌신예배죠. 그럼 헌신예배가 뭡니까? 헌신예배라는 뜻을 알려면 먼저 「헌신」이라는 말을 알아야 되겠죠? 그렇다면 헌신이 뭘까요? 예 헌신(獻身)이라는 것은 말그대로 󰡔몸을 드린다, 바친다󰡕하는 뜻이죠. 물론 몸을 드린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일이나 남을 위해서 몸과 마음을 다하여 힘쓰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몸과 마음을 다하여 일한다고 해서 아무일이나 아무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하면 되겠어요? 물론 아니죠. 정말 보람있는 일, 정말 아름다운 일, 정말 가치있는 일에 헌신해야 되겠죠. 만약 나쁜 일에 헌신한다면 헌신 안하는것만도 못하겠죠. 좋은 일에 가치있는 일에 헌신하고 수고하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되지만 나쁘고 악한 일에 헌신하면 나쁘고 악한 열매를 맺게 될테니까 말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헌신해야 되는데 정말 참되고 아름답고 가치있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정말 아름답고 가치있고 우리의 생명을 가장 풍요롭게 하는 일에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시간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몸과 마음과 시간을 정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몸과 마음과 시간을 가장 아름답고 가치있는 일에 사용할 수가 있을까요?

1.주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우리가 시간을 올바르게 보내려면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가장 올바른 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십시오.󰡕 이 말씀은 엉뚱한 것을 따라서 어리석고 바보같은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을 잘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은 어떤게 옳은 것인지, 어떤게 정말 우리의 삶을 가장 풍요롭게 하는 길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걸 모르고서는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진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옳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100%선하고 아름답고 가치있고 우리 인간의 삶에 유익만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금방 좋은 생각, 아름다운 생각을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또 나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거짓말을 할때도 있습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좇아다니려고 할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무지하고 어리석고 잘못된 것이 많은 사람의 생각을 따라 살면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때가 너무마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절대로 맞습니다. 절대적인 선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길이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절대적으로 거룩하고 영원하고 온전하고 아름답고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올바르게 살려면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을 살피며 진리를 향해, 선을 향해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기 있는 모든 성도여러분이나 우리 학생들 교사들 할 것없이 우리 교회에 소속된 모든 주님의 사랑하는 성도들께서는 오직 주의 뜻만을 살피며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걸어갈때에 더욱 하나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며 살게 되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마음은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게 뜻대로 잘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다 올바르게 진리안에서 아름답게 살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다 죄가 도사리고 있어서 그게 잘 안됩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몸이 뜻대로 안 따라 줄때가 많습니다. 속으로는 이래서는 안된다고 하며 나도 모르게 그 안된다는 뜻에 몸이 따라갈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어떻게하면 그걸 이길수가 있을까요? 거기에 대한 해답이 오늘 말씀에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18절의 말씀입니다.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방탕이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이게 무슨 뜻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주의 뜻을 깨달아 지혜롭게 진리가운데 살려면 세상의 다른 엉뚱한 것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잡다한 것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면 나도 모르게 그것을 따라 살아가게 되니까 그렇지 않으려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내 마음속에 예수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 말씀속에서 성령충만함을 받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님의 생각으로 가득채우라는 뜻이지요. 충만이라는 것은 가득차서 넘친다는 것이죠.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고, 하나님의 영은 거룩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사랑과 은혜와 생명의 은총이 가득한 영이죠. 그러한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에 가득 채우면 자연히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아름다워지고 깨끗해지고 믿음과 사랑과 은혜로 가득해 지고 그러면 우리는 정말 온전한 믿음가운데서 아름다운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여기서 술취하지말라고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술을 먹지 말라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술이 취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씀드릴수 있을 것입니다. 알콜이 뇌의 신경세포 사이의 정보교환을 방해하여 판단력을 저하시킴으로 육체나 정신이 뇌의 말을 잘 안듣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제멋대로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술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정신을 올바른 것에 똑바로 차리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못되고 헛되고 어리석은 것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헛된 것들이 여러분의 정신을 헷갈리게 하지 않도록 올바른 것에 정신을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가려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정신없이 살아가는 일이 없도록 늘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서 정신을 올바르게 차리고 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빼앗아 가는 것들은 무엇이 있지요? 폭력적이고 음란한 오락이나 만화, 또 때로는 텔레비전이 여러분의 마음을 빼앗기도 하고, 욕심이 좋은 마음을 빼앗아 가버리기도 하죠. 미움과 시기가 마음을 빼앗가 가기도 합니다. 돈이 마음을 빼앗가 가기도 합니다. 어른들은 명예와 권력이 마음을 빼앗아가기도 합니다. 향락과 도박과 방탕이 마음을 빼앗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잘못된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아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헛된 것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거룩한 영이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우리의 마음속을 예수님의 마음, 즉 사랑과 은혜와 믿음과의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 나쁜 생각들, 바르지 못한 생각들이 모두 쫓겨나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어둡고 혼탁한 세상속에서 꼭 예수님의 마음을 가득품고 살기를 바랍니다. 늘 기도하고 예배에 참석하고 찬송하는 삶을 통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가득채워 예수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3.성령충만함을 받은 모습

그렇다면 성령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것은 오늘 19~20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여러분의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찬송하십시오. 모든 일에 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무슨 뜻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며 모든 일에 감사와 기쁨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하며 그리고 장차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누릴 그 영광의 순간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고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게 바로 천국이 아니겠습니까? 감사와 기쁨과 은혜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며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 아니겠냐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살면 여기에 미움이나 시기나 질투나 도적질이나 이러한 못된 것들이 있을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우리의 마음은 기쁨과 은혜로 충만해집니다. 선과 의와 거룩과 성결함이 자리잡게 됩니다. 모든 어둡고 혼탁하고 추하고 밉고 사납고 고집불통인 것들은 물러가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정말 복된 삶이 됩니다. 복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진리를 따라 살게 됩니다. 생명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헛된 것에 우리의 마음과 몸과 시간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의 헛된 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라 진리를 따라 은혜의 길 생명의 길을 더욱더 온전히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교사를 세움을 입고 아동부 교사로서 헌신하게 된 우리 교사들은 여러분들이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시간이야말로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하나님께 드리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이 사명을 감당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같이 헌신예배에 참석한 우리 사랑하는 어린이들은 언제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더욱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여 비록 어리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정말 지혜로운 어린이, 하나님과 사람앞에 귀하게 여김을 받는 어린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온 성도들과 어린이들은 정말 참된 지혜자의 삶을 영위해 나갈때에 참으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는 은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진정 성령안에서,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지혜로운자의 삶을 영위해 나갈때에 세상에서 가장 복된 생애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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