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여러 가지 시험

야고보서 1장 2절

양을 키우는 목자는 염소를 함께 집어넣습니다. 양은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두면 병에 자주 걸립니다. 이런 양들 가운데 염소가 있으면 양들 사이를 헤집고 다닙니다. 이때 양들은 뿔 달린 염소를 피해 도망 다니며 저절로 운동을 해 건강해집니다.

우리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도 자녀들을 강한 믿음으로 키우기 위해 이런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우리에게 시시각각 찾아오는 여러 시험이 바로 우리 삶 가운데 염소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 시험을 이겨내기 위해 애를 쓰다 보면 어느새 우리 믿음이 자라나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욥은 말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 그 고난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믿음을 연단하는 은혜의 손길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 23:10)

사도 야고보도 같은 권면을 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야고보서 1:2)

하나님의 모든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훈련을 위한 시험입니다. 첫째, 이런 시험이 오면 기쁘게 참고 감당해야 합니다. 믿음의 유익을 위한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고난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도움 받을 사람도 만나게 하십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상 주실 것을 기대하며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른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야고보서 1:12)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다른 종류의 시험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사탄의 유혹(야고보 1:13)입니다. 사탄의 유혹은 속지 말고 즉시 물리쳐야 합니다. 이런 유혹이 찾아올 때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악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야고보서 4:7)

성경에는 하나님의 자녀를 타락시키기 위해 사탄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먼저 사탄은 그 사람에게 커다란 금덩이를 보여줬습니다. 그가 눈도 깜빡하지 않자 다음에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냈습니다. 역시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방법으로 그의 질투심을 자극했습니다. “당신의 경쟁자가 방금 자네보다 높은 자리에 올랐다네.” 그는 이 말을 듣고 얼굴을 찌푸리고 화를 내면서 자기 믿음의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성장시켜 결국에는 큰 상을 주시기 위해 인생길에서 여러 가지 염소를 만나게 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 굳센 믿음으로 나아가는 은혜로운 기회로 삼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원주희 목사(샘물호스피스 선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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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의 이산가족


전쟁 때문에 헤어져 생사를 모르고 오랫동안 그리던 부모형제를 찾아 헤매는 혈육의 정은“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실감나게 해줍니다.
길고 긴 세월에 잊었던 그리움이 다시 소용돌이치고 서로를 찾아 헤매다가 오래 전에 멈추어버린 지친 발길들이 이제 생기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긴 세월에 몰라보게 변한 얼굴 속에 깊이 패인 주름사이로 흘러내리는 눈물은 우리 모두의 눈물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깊은 이산의 아픔이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과의 헤어짐입니다. 본래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도록 창조함을 받았으나 사탄의 속임에 넘어가 사랑하는 아버지의 품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이사야 53:6).
우리는 아버지를 잃고 죄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부모와의 헤어짐이 수많은 비극과 눈물을 낳은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삶은 나름대로 선하게 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참된 해답과 만족을 얻지 못한 채 “이래서는 안 되는데...”, “나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다른 길은 없을까?”, “더 나은 삶이 있을텐데...” 라고 끊임없는 의혹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부모 없는 자식이 그 어떤 것으로도 부모의 사랑을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을 잃은 우리의 마음은 돈, 명예, 권력, 쾌락, 사람... 이 세상의 어느 것으로도 채울 수 없음을 잘 압니다. 또한 선을 행하기보다는 그르치고 실수하며 죄를 짓기 쉬운 자신임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본다면 정상궤도에서 벗어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일단 길을 잘못 들어선 우리는 그 결과가 좋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곧 우리가 이 길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면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성경은 알려 줍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를 찾기 위해 아버지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하나님을 떠남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죄에 대한 모든 형벌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담당하시고“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고 선언하심으로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십자가에서 마련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이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장애물은 제거되었습니다.

당신의 결정만이 남았습니다.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간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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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추석 추모예배 드릴 때 주의 할 점.
(추석, 명절과 기타 날에)

 

1,음식 준비:
1)음식은 조상이 와서 먹는 것이 아니므로 제사상으로 차리면 안 된다.
2)그러나 간편한 음식을 준비하였다가 추모 예배 후 가족들이 둘러앉아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다.

2,사진이나 영전:
1)고인의 사진을 준비하는 것은 좋으나 향이나 촛불을 켜서는 안 된다.

3. 절하는 문제 :
1)고인의 사진이나 영정 또는 음식물을 향하여 절을 하는 것은 우상숭배를

금한 계명을 범하는 죄가 되므로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한다.
2)부모 공경은 살아 계실 때 최선을 다하고 살아 계신 부모님께 절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죄가 되지 않는다.

4. 불신 가정에서의 문제 :
1)가족 전체가 불신 가정으로 제사를 해야 하는 입장에 있을 때
2)그 자리를 피하지 말고 절하는 대신 가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 된다.
3)이 때 분명하게 신앙상의 이유로 절은 할 수 없지만 가족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 드리겠다고 가족 앞에 태도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좋다.
4)(단, 가족들의 반발이 심할 경우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절해도 된다).
5)믿음을 포기하는 행위가 아닌, 가족들의 전도를 위한 것이다.

 

6)언젠가는 가족들이 다 예수 믿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5,산소에 성묘 갔을 때:
1)온 가족이 함께 묵념을 한다.
2)음식을 차리 놓고 절을 한다든지 묘에 술을 붓는 행위는 신앙적인 행위가

아니다.
3)불신 가정일 경우 다른 가족이 절할 때에 함께 서서 기도하고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더욱더 기도한다.


6. 기타 :
1)우리도 언젠가는 조상들처럼 육신은 한줌의 흙이 되어 하나님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기억하며.
2)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다짐하고,
3)형제자매들 간에 더 없는 우애와 사랑으로 살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결심하는 시간이어야 하며,
4)온 가족의 구원을 위한 기도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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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절기- 맥추 감사절에 관한 내용

 



맥추절, 맥추 감사절 

 
맥추 감사절은 구약의 3대 절기의 하나인 맥추절을 계승한 절기이다. 유대인들의 추수 감사절이었던 맥추절은 히브리 원어로는 '하그 하카츠르'이며 '거두어 수확하는 절기'란 뜻을 가지고 있다.

 

맥추절은 관련 명칭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출 23:16) 후대에는 일반적으로 칠칠절, 오순절 등으로 불리워졌다. 칠칠절(七七節)은 이때가 보리 수확의 첫 단을 하나님께 드린 초실절(初實節)로부터 시작하여 7주간의 곡물 추수기가 끝난 뒤의 시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오순절(五旬節) 또한 추수기와 관계된 말로, 이 날이 초실절 다음날로부터 계산하여 제 50일째 되는 날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그 외에 축제일 자체보다는 맥추절의 의식에 초점을 맞춘 '성회'(聖會)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유월절, 초막절과 같이 이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회로 모였음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맥추절은 한 해의 수확을 끝낸 기쁨 속에서 그 수확을 가능케 해주신 하나님께 기뻐하며 감사를 드린 축제였다. 동시에 인생의 모든 것은 오직 여호와께로만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고백하는 심정으로 일상의 모든 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을 재무장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에 현대의 우리도 맥추 감사절을 맞을 때마다 감사의 축제속에서 여호와 제일주의로 신앙 재무장을 새로이 하여야 하겠다. 특히 단순 농경 사회가 아닌 현대 사회의 우리는 나는 지금 어떤 사업을 하여 내 인생에 필요한 것을 공급받고 있는지, 또한 거기서 얼마큼 추수를 했는지를 돌아보아야 하겠다. 또 육식을 위한 추수와 함께 영혼의 추수 곧 전도 사역에서도 얼마만한 수확을 얻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하겠다.

 

1. 시기

 

맥추 감사절은 곡물을 수확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추수 감사절의 하나이다. 즉 맥추 감사절은 보리와 모맥 추수 직후에 거행되는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절기인 칠칠절, 즉 오순절과 관련을 갖는 날이다. 오순절은 본격적인 추수를 시작하기 전 곡식의 첫 이삭 한단을 하나님께 바치는 유월절 후 첫 안식일 그 다음날인 초실절 절기 후 50일째 되는 날로, 유대의 종교력으로 이 날은 7주전에 시작한 곡물 추수를 무사히 마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로 엄숙한 가운데 하루 동안만 행해졌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오순절은 성령 강림의 의미로 교회에서 더 크게 기념되어 진다. 그리고 곡물 수확에 관련된 감사절은 11월의 추수 감사절에 더 성대하게 기념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쌀 추수에 맞추어 지켜지는 추수감사절과 더불어 보리 수확과 관계되는 맥추감사절 역시 계속 지켜져 오고 있다.

 

이러한 맥추 감사절은 한해의 전반기가 끝나고 후반기가 시작하는 7월 첫 주일에 지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이날은 전반기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한편 후반기에도 역시 지켜주시기를 바라는 기원을 하여야 한다.

 

2. 유래

 

창조 시대의 아담과 하와는 수고하지 않고도 에덴 동산의 풍족한 양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해 에덴 동산에서 쫓겨 나게 되었고, 그 후에는 자신이 수고한 대가로서 땅의 소산을 먹게 되었다. 인류가 씨를 뿌리고 수고함으로 수확을 얻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린 것은 아담과 하와의 직속 자손인 가인과 아벨의 제사 기사(창 4:3,4)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때 가인은 땅에서 얻은 곡물을,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를 드렸다. 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추수한 산물과 그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는 풍습은 아주 오랜 전부터 인류에게 있어 왔던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사제가 하나의 절기로 자리를 잡은 것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유대인을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에 곡물 추수 감사제를 맥추절이라고 하여 하나의 절기로 기념하였다. 애굽을 떠나 40년 동안을 광야에서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인에 정착하여 그 땅의 소산을 먹게 된 것은 그들을 돌보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서 거둔 곡물의 처음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렸다(신 26:1-11). 이렇게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그 땅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께 그 땅에서 생산된 소산물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율법에 기초한 것이다. 이처럼 백성들이 드린 곡식단은 제사장에 의해 하나님께 바쳐졌는데, 바쳐진 제물의 일부는 제단에 드려졌고 그 나머지는 제자상의 몫으로 주어졌다.

 

그러나 이 절기가 유대의 전통 절기로 확고히 자리를 잡고 연례적인 순례 축제로 정착된 것은 그보다 뒤인 솔로몬 시대였다(대하 12-14장). 솔로몬은 여호와의 단을 쌓고 그곳에서 번제를 드렸으며, 모세가 명한 규례대로 무교절, 초막절과 함께 칠칠절, 즉 맥추절을 지켰다. 이에 따라 유대의 남자들은 이 절기에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도시의 경계까지 나와 있다가 예물을 드리기 위해 온 사람들이 이 도시의 경계에 이르면 그들을 성전으로 안내했다. 한편, 봉헌자들은 그들이 가져온 첫 열매의 예물을 바칠 때 신 26:3-10의 말씀을 낭송했다.

 

이러한 형태의 맥추절은 신약시대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교회사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인 오순절 성령 강림후, 이날은 성령 강림일로 기념하게 되었고('성령 강림절' 참조), 교회에 있어 맥추절의 의미는 약화되었다. 그러나 추수로 인한 감사는 민간 차원에서 계속해서 드려졌다. 그러던 것이 미국에서는 신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에 의해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부각되면서 추수 감사절이란 명칭으로 바꾸어져 지켜지게 되었다('추수 감사절' 참조).

 

우리 나라에서도 일반적으로 추수 감사 행사를 미국에서 유래한 감사절에 근거해 기념하고 있다. 그런데 교계 일부에서는 우리 나라 실정에 맞는 추수 감사절을 기념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며, 일부 교회에서는 우리 고유의 민속 절기인 추석을 추수 감사절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맥추 감사절은 이모작을 하였던 우리 나라 에서는 보리 수확을 기념하는 절기로 정착되어 오늘날까지 계속 지켜져 오고 있다.

 

3. 풍습

 

(1) 이스라엘의 풍습

 

유대인들은 밀추수가 끝난 직후 풍성한 수확을 기념하는 맥추절에 새로 추수한 첫 곡물을 고운 가루로 빻아 그 가루에 누룩을 넣어 만든 떡 두덩이를 요제(搖祭), 즉 흔들어 드리는 제사로 드렸다(레 23:15-17). 오늘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전통 절기에 드려졌던 이 두덩이의 떡을 상징하는 유제(乳劑) 음식과 고기를 먹는다. 한편 이때 제단에는 떡 두덩이와 함께 어린 숫양 두 마리가 화목제물로 드려졌는데, 화목제는 하나님과 제물을 드리는 사람 사이의 화목과 교제를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고 난 나머지는 제사장과 함께 봉헌자가 먹을 수 있었다. 또한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제가 드려지는 이때에는 성전 봉사자인 레위인, 초대된 나그네와 가난한 자들이 함께 공동 식사를 하였는데, 이는 미국에서 첫 번째 추수 감사절에 청교도와 인디언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예식이 끝난 후에는 예식에 참가했던 이스라엘 남자들이 할렐(시 113-118편)을 부르고 춤을 추는 풍습이 있었다.

 

추수와 관련하여 이스라엘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독특한 풍습이 있는데, 그것은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하여 밭 모퉁이 곡식을 거두지 않으며 나무의 열매도 다 거두지 않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은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택함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한 형제라는 공동체 의식에 기초한 것으로서, 가난한 자들을 자연스럽게 구제하는 방법이 되었다(레 23:22).

 

한편 이때 이스라엘에서는 고대 추수 광경을 배경으로 기록된 룻기서가 읽혀졌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성전파괴 후에는 시내산 율법 수여를 기념하는 의미가 부여되면서 토라, 율법서등 율법과 관계된 구약 성서 등이 읽히거나 낭독되었다. 이러한 풍습은 오늘날 이스라엘 사회에서 많이 간소화되었지만 계속해서 행해지고 있다.

 

(2) 세계 일반 교회의 풍습

 

맥추 감사절이 이스라엘의 전통 절기의 하나인 맥추절로부터 유래하기는 하였지만, 곡물 수확 후 감사제를 드리는 것은 유대인들만의 전유물을 아니었다. 농경을 하는 모든 나라에서는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수확으로 인한 감사제를 드렸다.

 

이러한 풍습은 중세 교회 시대를 통해 자연스럽게 기독교와 접목되어 추수 감사절로 이어지게 되었다. 중세 유럽의 교회에서는 예수의 승천일 3일 전에 추수제의 한 형태로 풍년 기원제를 드렸으며, 영국에서도 라마스(Lamas)라 하여 8월 1일에 수확 감사 예배를 드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추석이라 하여 음력 8월 15일을 민속 전통의 추수 감사일로 기념하고 있다. 추석은 일년 농사를 거의 마무리 지은 때로, 이날에는 조상을 생각하며 성묘를 하고, 햇 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8월 대보름 달을 구경하는 등 다양한 풍습이 행해졌다. 또한 오늘날 교회의 추수 감사절을 유래케 한 미국에서는 이날 칠면조 고기 등 추수 감사절 음식을 먹으며 풍성한 수확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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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기도회 기도문 (예배기도문, 장례식기도문)

 

 

 

▶ 예배 기도문
사랑의 주님, 한 주간 동안에도 주님께서 저희를 품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반석이 되시고 생수가 되시는 주님,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 계셔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주님,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찬양과 영광을 받아 주옵소서.
주님께서 저희를 늘 사랑하시건만, 저희들은 이 세상에 마음을 두고 산 일들이 많습니다. 생각으로 범죄하고 언행으로 범죄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 이 시간 저희들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위정자들을 축복하여 주옵시고, 모든 공직자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시고 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일꾼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땅 위에 있는 많은 교회들을 복내려 주옵소서.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특별히 저희 교회를 축복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주의 영광을 더 크게 드러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옵소서. 교회를 섬기시는 목사님을 축복하여 주시고 언제나 주님께 영광돌리도록 강건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저희들, 크고 작은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주 앞에 나왔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다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셨으니, 이 시간 저희의 모든 수고와 짐들을 다 맡아주옵소서. 저희에게 십자가의 사랑이 가득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주님을 만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저희의 예배 가운데 함께하여 주옵소서. 예배를 돕는 모든 일꾼들 가운데 함께하여 주셔서 저희들이 한 마음으로 주님께 경배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각종 예배 및 기도회 기도문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아버지 하나님, 이 시간 ( )로 예배를 드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시고 불러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여 주시고 영광을 받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가정에 이 기쁜 일을 주셨으니, 앞으로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어 살게 하옵소서. 언제나 주님만을 바라보고 살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한 인생이 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오늘 예배 가운데 함께 하시고, 말씀을 전해주시는 목사님에게도 함께 해 주셔서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에게 큰 은혜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장례식 기도문

 ▶ 임종 예배
위로의 아버지 하나님, 지금, 저희들이 이곳에 모여 이 세상을 먼저 떠나 아버지 앞으로 가신 ㅇㅇㅇ 성도님의 장례 예식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고인의 영혼을 거두셨으니, 아버지의 품에 평히 안기게 하시고,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겪었던 모든 슬픔과 눈물을 닦아주심을 믿습니다.
여기 남아 있는 유족과 우리 모두가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하늘에 큰 소망을 두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사랑하는 유족들에게 한량없는 위로를 주셔서, 이 모든 아픔을 이기게 하시고, 하나님의 큰 평안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앞으로의 모든 장례 절차 가운데 함께 하셔서 평안하고 경건한 의식이 되도록 은혜를 주옵소서.
오늘 말씀을 전해 주시는 목사님에게 함께하여 주셔서 말씀을 통하여 유족들과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가 큰 위로를 받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입관 예배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섭리에 순종하여 우리 모두가 엄숙히 머리를 숙였습니다.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시들고 말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인줄을 저희들은 압니다. 그러나 오늘 귀한 000 성도님 앞에 서니 슬픈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저희들에게 인생의 의미와 부활의 의미를 알게 하시고, 저희에게 큰 위로를 주옵소서.
저희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시는 아버지 하나님, 이제 000 성도님의 입관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주님, 우리의 집은 영원한 하늘나라임을 고백합니다. 이미 고인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편히 안식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먼저 떠난 고인을 생각하며 슬퍼하는 사랑하는 유족들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오늘 말씀을 전해 주시는 목사님에게 함께하여 주셔서 말씀을 통하여 유족들과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가 큰 위로를 받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발인 예배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형제(자매) ○○○성도(집사, 권사, 장로)님의 발인예식을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고인이 살던 이 정든 곳을 떠나는 길목에 있습니다. 주님, 그러나 이미 고인은 주님과 함께 황금 동산을 거닐고 있음을 저희는 믿습니다. 이 시간 사망 권세를 이기신 주님께서 임재하여 주셔서, 저희에게 부활의 소망으로 가득하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유족들 위해 은혜를 주옵소서. 사랑하는 유족들이 "우리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알고 큰 위로와 소망을 얻게 하여 주소서.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시는 목사님에게 은혜를 주시고, 우리가 그 말씀을 들을 때에 천국을 향한 소망과 믿음이 더욱 충만하게 하옵소서. 임지까지의 모든 길을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하관 예배 기도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지금 우리의 형제(자매) ○○○성도(집사, 권사, 장로)님의 몸을 이곳에 안장하고자 합니다.
그의 육신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옵고, 그의 영은 하나님께로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성도(집사, 권사, 장로)님을 보내야 하는 유족들과 여기에 둘러선 우리 모두의 슬픔을 위로해 주옵소서. 주님 재림하시는 날, 우리 모두 부활하여 기쁨으로 다시 만날 소망과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추도예배 기도문
인간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하여금 주의 은혜를 힘입어 죽음과 절망의 어두운 세계 가운데서도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OOO 성도님의 하나님의 나라에 가신 날을 맞이하여 추모예배로 모였습니다. 고인에게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신 은총을 감사드립니다. 오늘까지 사랑하는 식구들을 믿음 안에서 붙들어 주시고 이끌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모든 식구들이 고인이 품으셨던 큰 뜻을 헤아리게 하옵시고, 모든 식구들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아 살게 하옵소서. 이 땅의 것을 바라보고 실망하지 않게 하시고 눈을 들어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살게 하옵소서.
오늘 추모 예배를 통하여 모든 식구들이 위로하며 사랑으로 하나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으뜸으로 섬기게 하여 주옵소서. 예배 가운데 함께 하여 주시고,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큰 은혜를 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와같이 모든 크고 작은 공중예배에서 회중을 대표하여 하는 기도는 모두 대표기도이다. 중보기도의 맥락에서 파악할 때 대표기도자는 하나님과 회중의 한가운데 있으며 회중과 일치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평신도성경대학원(박흥천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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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세 가지 후회 Three regrets when they die

 

 

 


첫째는"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
가난하게 산 사람이든 부유하게 산 사람이든
죽을 때가 되면 "좀 더 주면서 살 수 있었는데… "
 

이렇게 긁어모으고, 움켜 쥐어봐도 별 것 아니었는데
왜 좀 더 나누어주지 못했고 베풀며 살지 못했을까?
참 어리석게 살았구나 이런 생각이 자꾸 나서
이것이 가장 큰 후회랍니다.

둘째는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쓸데없이 행동했던가?
하고 후회한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좀 더 참을 수 있었고,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참았더라면
내 인생이 좀 달라졌을 텐데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친 것이 후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빡빡하고 재미없게 살았던가?
왜 그렇게 짜증스럽고 힘겹고 어리석게 살았던가?
얼마든지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었는데...


하며 복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며
또한 이러한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한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해서 후회라고 합니다.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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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동 목사님 설교중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 마루 바닥에 구명을 낸 웨슬리의 기도...♧

한 유명한 목사가 영국을 여행하던 중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리 선생의 고택과
집무실을 둘러보게 되었답니다 평소에 기도하던
기도실로 들어간 그는 마룻바닥에 쥐구멍 같은 구멍이
두 개 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곳 안내자에게 물었습니다. 

"저것은 무슨 구멍입니까?" 
"목사님 생각에는 무슨 구멍 같으세요?" 
"글쎄요,모르겠는데요. 혹시 쥐구멍이 아닌가요? 맞습니까?" 

"천만에요. 저것은 웨슬리의 기도의 흔적입니다."
얼마나 기도를 열심히 했던지 웨슬리가 무릎을 꿇고
기도한 그 마룻바닥에는 쥐구멍 같은
무릎 자국이 구멍처럼 뚫려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새벽 4시에 두 시간씩
기도하고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규칙적으로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기도를 중요시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모든 빛을 띤 청명한
얼굴로 기도실에서 나오는 것을 종종 보았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은 참 신비한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큰소리 치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하나님 손바닥 안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믿고,
조용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참 잘 참고 기다립니다.
물론 해야할 일은 하지만,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너무 쉽게 자신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이 직접 일하실 것을 기다립니다.
이러한 기다림은 위대한 행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실망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겐 실망이란 없습니다.
 
아무리 앞 길이 캄캄해도,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고,
나날이 더 힘들어지기만 해도,
기도하면 길이 열립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결코
내버려두시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섬기는 교회
목사님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세요
지금은 목회자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때 입니다

기도하지 않은 목사
기도하지 않는 성도
하나님이 쓰지 않으세요

믿음의 성도는
오직 기도로만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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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손양원목사는  한국교회가 낳은 세계적인 목회자요, 순교자였던 손양원목사의 전기를 쓴  안용준목사는 "사랑의 원자탄"이란 표현으로 손목사의 감화력을 표현하였 다.

 

 

 

 

 

  손양원 목사는 1902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926년 3월 경남성경학교에 입학하여 부산 감만동 교회의 전도사로 일하기 시작한 이래 1932년, 34년 2년간 남부민 교회를 시무한 기간을 제외하고 1939년 애양원교회에 부임할 때까지 개척 전도에 전념하였다.

 

   1939년 여수 애양원 교회로 부임하였고 설교 때마다 주님의 뜻이 아닌 신사 참배를 강요하는 일본은 망한다고 주장하였다. 신사 참배 거부와 백성들을 선동하였다는 죄목으로  구속되어 해방이 될 때까지 6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1943년 만기 출옥이 가까웠을 때 담당 검사가 목사에게 "덴꼬(轉向)"해야만 나간다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손 목사는 그 검사에게 "당신은 덴꼬가 문제이지만 나에게는 신꼬(信仰)가 문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옥중에서 가정에 보낸 서신은 옥고중의 그의 신앙적 수용 자세를 보여준다.

 

 하늘에 어찌 두 해가 있을 수 있고

 일국에 두 임금이 있을 수 있으랴

 우주의 주인공이 어떻게 둘 되겠으며

 십자가의 도외에 구원이 또 어디 있으랴

 세상에는 주인도 많고 신도 많으나 여호와

 이외에 다른신이 내게 없구나

 석가도 유명하고 공자도 성자이나

 오직 내구는 홀로 예수뿐이니

 내 어찌 두신을 섬길 수 있으며 예수님 이외에

 속죄자 어디 있으랴.이신을 위하여 아까울 것

 무엇이며,이주를 버리고서 내가 어디로 가랴

 

 (손동희저,나의 아버지 손양원목사,p.89) 

 

  1948년 10월 19일 여순 반란 사건으로 두 아들이 총살당했을 때 손 목사가 장례식 끝 부분에 고백했던 마지막 인사는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한 편의 복음과도 같은 것 이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을 나오게 하였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로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 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합니다.

  

  끝으로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일들이 옛날 내 아버지, 어머니가 새벽마다 부르짖던 수십 년간의 눈물로 이루어진 기도의 결정이요, 나의 사랑하는 한센병자 형제자매들이 23년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 준 그 성의의 열매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


  여순 반란이 진압된 후 두 형제를 죽인 자 중의 한명인 '안재선'이라는 학생도 체포되어 총살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 소식을 들은 손 목사는 계엄 사령관에게 찾아가서 "나의 죽은 아들들은 결코 자기들 때문에 친구가 죽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 애들은 친구의 죄 때문에 이미 죽었습니다. 만일 이 학생을 죽인다면 그것은 동인, 동신 형제의 죽음을 값없이 만드는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그 학생의 석방을 간청하였다. 그의 간청은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손 목사는 그 학생을 손재선이라 하여 자신의 아들로 삼았다. 손 목사는 그를 부산의 고려 성경 고등학교에 수학하도록 하여 전도사로 키워내는 놀라운 사랑의 역사를 보여 주었다.


  애양원 교회는 한센병자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애양원 한센병자 수용소는 미국남장로 교회 선교회의 전도 사업의 일부분으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9명으로 시작하였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1천 명이상을 수용하는 대규모의 한센병자 수용소가 되었다. 손 목사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 36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할 때까지 이곳에서 환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으며 잠자리도 같이하며, 사랑을 말로써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하여 실천하였다.  

 

  1950년 6·25사변으로 남한의 대부분이 공산군에게 점령되자 교회도 문을 닫고 피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손 목사는 피난하지 않고 교회에 남아 계속 교회 종을 치게 했으며, 자신이 강사가 되어 계속하여 교회에서 특별 집회를 했다. 집회의 주요 내용은 '잘 죽자'라는 것이었다. 우선 몸부터 피하고 보자는 제직들의 간청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손 목사는 함께 송별 예배를 드리고 배에 올라가 마지막 찬송을 부른 후 갑자기 혼자만 배에서 가방을 들고 뛰어 내려왔다.


  교인들이 "목사님, 왜 피난을 가시지 않는 겁니까?"라고 묻자, 손 목사는 "나는 원래 피난을 가지 않는다고 했지 않습니까? 주의 이름으로 죽는다면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그리고 만일 내가 피신한다면 일천 명이나 되는 양떼들은 어떻게 합니까? 내가 만일 피신을 한다면 그들을 자살시 키는 것이나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하며 피신하기를 완강히 거부하고 제직들만 보냈다. 손 목사는 마침내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총살당하여 순교의 영광을 간직하였다. 당시 손 목사의 나이는 4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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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응답과 감사의 기적

 

 

  
기도 응답에는 ‘그래’와 ‘안 돼’ 그리고 ‘기다려’ (Yes/No/Wait)라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기도 응답이 Yes(그래)로 나오면 우리는 감사하고 감격합니다.

그러나 응답이 No(안 돼)로 나오면 실망합니다.

Wait(기다려)의 경우는 No(안 돼)와 분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우리는 ‘기다리라는’ 이 기도 제목에 대해 하나님이 No(안 돼)를 하신 것으로 판단을 내려야 할지 잘 모릅니다.

잘못된 기도는 있으나 응답이 없는 기도는 없습니다.

바른 기도는 이미 그 기도 속에 응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우리가 구하는 바를 거절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 동안 친근하게 지냈던 나사로가 병들어 눕게 되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는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에게 SOS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나사로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만약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가 되어 이런 상황에 던져졌다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해 기도의 응답이 지연될 때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기도의 열쇠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열쇠만 가지고 있다면 조금 더디더라도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소위 고통이나 불행을 겪으면 제일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왜, 어찌해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묻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예외 없이 질병과 죽음이 온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주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나사로 인생의 현실에 질병과 죽음이 찾아온 것입니다.

인생의 도상에서 질병과 죽음을 만나거든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랑만은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질병이나 죽음의 이유를 납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지속된다면 다릅니다.

우리가 극복하지 못하거나 인내하지 못할 상황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열쇠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님이 사랑하시는 복음의 사도가 되었음에도 수많은 고난과 싸워야 했습니다.

사십에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생명의 위험과 더불어 동족인 유대인들의 참소와 살해 위협을 당했습니다.

수 차례 감옥에서 여러 시련을 당했습니다.

바울이 이 모든 고난을 견디고 이겨낸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로마서 8장 35절 이하의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바로 하나님 사랑의 확신이었습니다.

고통의 현실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더라도 이것만은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한다면 마침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다음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어떤 섭리입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말입니다.

오늘 우리의 고통이 마침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룰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고통이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것이 요한복음 11장 4절의 말씀 선포가 아니었습니까?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나사로가 결국 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다움도 생각해야 합니다.

나사로가 죽음에서 일어나 부활한 사실 말입니다.

그것은 치유보다 더 좋은, 죽음을 이긴 놀라운 승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죽음이 인생의 결론이 아니라는 사실을 선포하셨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지연될 때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 응답이 지연되더라도 믿어야 합니다.

더 좋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숨겨져 있음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아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내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은 다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습니다.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더 좋은 방법으로 역사하시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 감사

기도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다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궁극적으로 선하신 섭리를 믿을 수 있다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기도 열쇠밖에 없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으로 모두가 슬퍼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만에 그 가정에 도착하신 예수님도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시기만 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섭리, 즉 부활의 섭리를 아셨기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성에 대한 확신에 근거합니다.

요한복음 11장 42절에서 우리는 확신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러므로 삶이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기도 응답이 지연되고 있어도 만일 하나님의 선한 섭리와 사랑, 그리고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야말로 이런 감사의 기적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도란 감사의 기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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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삶은 전도입니다.

 

전도 10초 메시지  


지금 들고 있는 핸드폰(물품들~) 누가 만들었나요?

아 네 삼성입니다. (다양한 대답들~)

어떤 것이나 저절로 생겨난 것은 없습니다.

저 아름다운 자연도 동물 사람도 만든 분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만든 분이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믿으세요.

 

 

 

 


* 10초 복음 메시지(사람이 사는 것)

사람은 3번 산다고 합니다
한번은 엄마 뱃속에서 사는 270일입니다.

또 한번은 뱃속에서 나와서 100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죽어서 영원히 삽니다.

영원히 사는 사후 세상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천국 문으로 가는 길이 되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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